깻잎을 씻는 내 옆엔 내가 없다
내 옆에 없는 나는 내가 깻잎을 씻는 동안 시를 쓸 수 없고
문예지를 아무리 훑어봐도 내가 쓴 시는 도통 찾을 수 없다
오래전
간간이
살아낸
어떤 이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옆을
따라다닌다.
내 옆엔 내가 없고 그 어떤 이가 여전하게 있다
오래전 폐기한 마음을 도로 가지고 와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그이에게 까끌까끌한 깻잎을 밥 위에 올려준다
내가 기다리는 건 질서 속에 출구와 무질서 속 영원함이라
어디로 손을 뻗어도 닿으면 아프다
내 앞에서 그이는 아무렇지 않게 삼킨다
조그마한 입안에서 깻잎과 밥알이 뭉개지고 망가진다
깻잎이 누워있던 자리에는 잎을 잃은 잎자루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그이는 내 손에 바라고 기대하며 기다린다
나는 또 한 번 깻잎을 씻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