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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Apr 30. 2024

할아부지, 안녕!

우리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다.

내 뮤즈는 할머니였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내 소설에도, 내가 직접 낸 책에도 할머니가 꼭 등장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분명 질투하셨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할아버지도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하셨으니까. 얼마 전 아빠에 대한 글도 썼다. 아빠에 대한 글을 잘 써본 적 없어서인지 낯간지러운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아빠가 엄청 좋아했다. 누군가의 글에 담긴 다는 것은 그런 일인가 보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국가유공자이시다.

그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우셨는지 어딜 가든 국가유공자 모자를 쓰고 다니셨다. 매일매일 쓰고 다니셨던 터라 모자에서 냄새가 날 정도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불사신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는 종종 공사장에서 단기 일을 하셨다. 그때 높은 곳에서 떨어지셨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걷는 것조차 힘들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빠도, 아빠의 형제들도 안타깝지만 받아들이려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때 아빠와 아빠의 형제들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의 DNA에는 불사신의 피가 흐른다는 것!


잘 먹고 잘 쉬어서 3주 만에 제 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가셨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퇴원하시고도 꾸준히 공사장에 가서 단기 일을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말이다. 그때 이후로 의사 선생님의 '안타깝지만'이란 말에 역설적으로 조금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연세가 꽤 있으신데도 자전거를 굉장히 좋아하셨던 터라 자주 다치셨다. 언제는 머리를 크게 한 번 다치셔서 의사 선생님께서 안타깝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아빠와 할머니를 제외하고 가족들을 아예 기억도 못하셨다. 그때 나는 대학교 셔틀버스 안에서 30분간 숨죽여 울었다. 그날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병원에 찾아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가만히 있질 못하는 할아버지와 그를 제어하는 간병인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는 또 울음이 났다.


"할아부지."

"와?('왜?'의 방언)"

"내 기억하나? 내 은수다."

"그게 누군데."


나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불러보았다.


"할아부지!"

"와?"

본인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자각하고 계셨던 것 같다.(신기했다.)

"내 은수다!"

"누고?"

그런데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슬픈데 이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허탈해서인지 나를 기억 못 하는데 본인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가 너무 귀여워서 인지 울다가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울다가 웃고 있는데 할아버지와 같은 병동 옆호실에 계신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안녕하세요, 손녀예요?"

"네, 안녕하세요!"

"우리 할아버님 병동에 인기스타셔요."

"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얼마 전 우리 할아버지가 자신의 호실에 찾아와 국가 유공자 훈장을 내미셨다고 한다.

"오, 할아버님 멋지셔요!"

라고 말하자마자 할아버지는 씩 미소를 띠었다고 한다. 그 훈장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던 찰나에 간호사 선생님들께 눈에 띄어 할아버지는 본인의 호실로 끌려가셨다고. 그 후로도 종종 아저씨께 놀러 가셔서 모자도 보여주고 상장도 보여주며 웃으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할아버진데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고 어딘가 모르게 짠해졌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는 중요한 자리에 항상 그 모자를 쓰고 다니셨다. 내 운동회에도, 친척들의 결혼식에도, 어딘가 가족 여행을 갈 때도.


"거기 철근 있어. 학생, 나와! 지금 일 중이다."

"할아버지, 왜 그러는데."

할아버지는 지금 나와 공사장에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다치지 않길 바라는 그 마음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할아버지, 여기 공사장 아니다. 병원이다."


할아버지가 공사장에서 벗어나는 걸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희망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가자 나를 기억하고, 언니를 기억하고, 사촌들을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더 지나고 할아버지는 완치 판정을 받고, 다시 한번 두 발로 걸어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믿기 시작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불사신이라는 것에 대하여.


지금은 내 곁을 떠나셨고 사실 불사신도 아니었지만, 그리 먼 곳으로 가시지 않았을 것 같다. 항상 꿈에서 할아버지가 나오면 웃게 된다. 아빠의 개그감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내 지인의 꿈에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고 한다.


"우리 은수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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