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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l 10. 2024

버려진 신발

1분 소설

 어제 버린 신발이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버림받은 주제에 버젓이 내 눈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 번 버린 것이다. 두 번째로 버리는 건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다. 눈앞에 신발을 버리기에 나는 너무 지쳤고 당장은 쉬고 싶었다. 

번져있는 눈화장을 리무버로 닦아낸다. 화장솜엔 코랄빛 색깔과 펄이 함께 묻어 나온다. 화장을 지우는 일은 연필 깎는 일과 닮아 있다. 줄거리 전개가 어찌 됐든 작아지는 게 결말이니까. 


 욕실에서 나와 살포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벽지에 새겨진 패턴을 읊다가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신발이었다. 현관에 있던 신발이 방 안까지 들어왔다. 

 "버려야 되는데."

 머리가 지끈 지끈거려 삼 분간 지그시 눈을 감았다. 피곤해서 무게가 실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때 신발은 다시 현관에 있었다. 그 안엔 구겨진 신문지가 들어 있었다. 아까는 없었는데 지금은 생겼다. 삼 분이 그럴 수도 있는 시간이구나 싶었다. 신발은 나를 만나기 이전에 모습에 닮아가려 한다. 그럴 수 없겠지만 나는 신발의 앞날을 응원한다. 그래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눈 감아줬다. 

어제 버린 신발을 오늘도 버리게 되었다. 신발이 본래의 모습을 닮아가려 할지 새로운 모습을 찾아갈지 알 길이 없다. 문은 닫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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