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옥주와 동주가 싸울 때 할아버지가 중재하는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
- 당신은 곧 자식들의 선택에, 손주들의 선택에 의해 요양원에 갈 거예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엄마가 없는 내게 축복이었던 존재들이다.
운동회가 열리면 항상 직장을 다니던 아빠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돗자리를 펴고 응원했다. 다른 아이의 엄마 아빠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기 자식을 찍는 가운데 할머니는 가슬가슬한 손으로 내게 김밥을 먹여줬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싸 온 김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한 식당에 갔다. 무생채, 오징어무침, 수육 등이 있었다.
나는 당연하듯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컸다.
근데 그때 좀 자랑스러워할걸.
아빠에 이어 나까지 키워내던 그 손을 조금 더 잡아줄걸.
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자주 다쳤다.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결국 요양병원에 모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공황이 재발했다.
다른 이들은 엄마, 아빠의 죽음이 크게 느껴질 거다. 근데 난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빈자리, 아니 그보다 더 컸어서 일주일 내도록 울었다.
그때 당시 호텔델루나가 방영되었고 그 드라마엔 삼도천을 향해 가는 망자들이 나왔다. 우리 할아버지도 저기를 지나고 있으려나 싶었다.
할아버지가 가시고 할머니의 치매증상이 악화됐다.
가족끼리 오랜 고민을 했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니 때문에 산다."
할머니는 날 20년 동안 키웠다. 그리고 나 때문에 산다고 했다.
"할머니 우리 집에서 모셔요. 못 보내요 할머니."
6개월 동안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집에서 간병을 했다.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할머니를 누구보다 안고 싶으면서도 누구보다 놓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면 내가 그 선택을 다시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6개월이 지나고 할머니는 고모가 데려가 모셨다.
고모는 할머니를 우리보다 두 달 더 모셨다.
고모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가능했을 거다.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남매의 여름밤을 보니 우리 본가가 생각났다.
지금은 아빠 혼자 지내시는데 갈 때마다 느낀다.
집이 너무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