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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Sep 06. 2023

거품 속에서 춤을 추는

습관처럼 돈 돈 거리는 사람이 별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별롭니다. 돈이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세상에는 돈 보다 귀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말하지만 다 입바른 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 저는 돈에 환장한 위선자입니다. 사람은 배신해도 돈은 배신하지 않으며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선택권이 많아집니다.


제가 다녔던 첫 번째 직장은 에이전시답게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던 곳이었습니다. 전례 없는 코비드 상황 초입에서 미친 듯 상승하는 PPE의 수요에 기가 막히게 탑승했고요. 죽어가는 건 직원들입니다. 저의 몸뚱어리는 딱 하나인데 몇 인분을 해야 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날 밤 저의 얼굴과 몸은 붉은 반점으로 가득 찼습니다. 잠들지 못하고 거울만 내내 쳐다보다가 다음날 출근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퇴사를 말했지요. 면수습이 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몸이 회복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자신들 가까이에 두고 싶어 했고 그래서 저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코시국의 간호 병동은 수술 날과 퇴원 날을 제외하고는 면회가 되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아빠는 퇴근 후 매일매일 병원 로비에서 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가곤 했습니다.


퇴원 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했고 저는 행복을 느꼈지요. 그러나 학원 강사 생활은 제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맛이 간 몸은 매번 변동되는 시간표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일반적인 직장으로 돌아가서 고정된 시간 속에서 무리하지 않고 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충성과 무리는 결코 없어야 합니다. 물론 에이전시는 다시는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지요. 에이전시는 안 돼! 절대 안 돼! 다시는 안 돼!


저는 곧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에 모든 것은 완벽해 보이는 법일까요. 수출입 정도야 무난하게 수행할 수 있었고 시장 조사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중구난방으로 아이템을 다루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히 정해져 있는 아이템 덕택에 쉽게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직원 복지가 꽤 괜찮은 회사였고 이슈가 없다면 이른 퇴근도 가능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있더라구요. 하루하루 압박감에 시달리던 중 이직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설립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스타트업의 영업직이었습니다. 교수가 창업했으니 기술 하나는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돌이켜보니 저는 그저 그 순간 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요.


스타트업의 영업직은 할 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몰두하여 결과물을 만들게 되는 일은 꽤 두근거리는 일이었습니다. 한계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차근차근 배워가는 일은 저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관심이 넘쳐나고 언제까지나 생기가 넘치기를 기대했으나 성희롱과 성추행 엔딩을 맞았지요.


그 일 직후 저는 제가 다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스스로 직장 생활과 맞지 않은 인간이라고 한탄했지요. 그러나 얼마 가지는 않았는데요. 그저 계속해서 돈을 벌고 싶더라요.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실패했으니 한국을 떠나서 직장 생활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노자가 되었습니다. 외노자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는 끝없이 인원 감축을 하고 하루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료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만 성질이 나서 스스로 떠나기로 마음먹게 되는데요. 마지막 근무일로 정해져 있던 날에는 거짓처럼 열이 끓었습니다. 몸이 흐물흐물한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던 것 같습니다. 위험적인 요소가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인지라 가뿐히 새로운 회사와의 첫 출근 일을 협의했습니다. 퇴사하기 위해 입사를 하는 건지 입사하기 위해 퇴사를 하는 건지 그저 닭과 달걀의 선후관계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에 제 발로 돌아오다니요. 그렇습니다. 의지와 선택은 가끔 웃기는 짬뽕이 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첫 출근을 한 지도 어느새 두 달가량 지나가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첫 출근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틀림 대신 다름을 받아들이고서는 괜찮아졌습니다. 근속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산업 군에서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겠죠.


몇몇 분은 저더러 왜 이렇게 강박적으로 일을 하냐고 묻곤 합니다. 당연하게도 돈이 있어야 계획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말입니다. 계획에 도른 자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답니다. 물론 여러 번 틀어지는 덕택에 많은 수정을 거치기는 했지만요. 지금까지 수정된 바에 따르면 30살 이전까지는 현업에서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30살이 되는 해 저는 다시 돌아가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껏 배우고 적용하고 40살이 되는 해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후에는 글을 쓰고 나누고 사는 게 저의 꿈이어요. 어쩌면 망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목표가 있으니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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