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살 생각이란 애초부터 없었답니다. 모든 것은 닳아 없어지기 마련인데 구태여 저는 저의 체력과 정신의 소모를 가속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무리하다 쓰러지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고 이것은 변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밝은 표정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스스로 한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어난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깊이 실감한 이후부터 저는 어쩐지 입꼬리를 한껏 올려봐도 냉소를 숨길 수 없게 되었지요. 억울한 감정은 없습니다. 순응할 것은 순응하되 테두리 안에서도 개척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효율을 따지는 사람으로 자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마도 날 때부터 효율을 따졌던 것 같습니다. 몸을 쓰기 싫어서 머리를 쓰고 제가 집요해지면 모두가 도망가곤 했습니다. 애초에 저의 마음에 꼭 드는 건 별로 없었지요. 그래서일까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제가 정말이지 그것을 놓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몇 번의 반복 끝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감정이 들끓으면 피곤할 뿐이어요. 저의 삶을 저에게 이로운 방법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가급적 노력을 덜 하고 세상만사 귀찮은 것들은 모른 척하면 되는 거여요. 그렇게 처세술만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테두리 안에서 저는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저의 최선이 되었지요.
바닷속에 있지 않고 육지와 하늘 그 어디쯤 거대한 몸으로 둥둥 잘도 떠 있는 물고기를 생각하곤 합니다. 거대한 그는 무언가 톡 찔러도 툭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 현실도 그처럼 강력한 초현실이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그랬지요. 몬난 손녀는 계속해서 순수를 좇고 싶다네요. 쉽게 낙담하고 쉽게 사랑을 느낍니다. 본질을 모르겠으니 순간이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웃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다 그 언젠가 순간이 본질이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해결 불가한 문제는 원인을 제거하면 퍽 편하다는 걸 아시나요. 적응을 원하면서 깨부수고 싶고 욕망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른 이의 속을 뒤집으면 스스로의 속도 잔뜩 뒤집힙니다. 빠른 쾌락과 느린 여유라고 할까요. 눈을 감으면 세상이 없어집니다. 눈을 뜨면 나타나겠죠. 아아 결국 세상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눈을 뜨면 존재하는 거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지요. 눈을 감으면 세상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러니 이연주는 원하는 대로.
소스 없는 샐러드는 싫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