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이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부터 예전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란 우습지요.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가도 한 번 끌어올려지면 멈춰지지 않습니다. 항상 아무 노력 없이 볼 수 있었던 우리의 학창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그와 작별 손짓을 나누고 저는 한강으로 향했습니다. 강이 보이는 벤치에 기대어 아주 예전에, 제가 프랑스어를 처음 공부하던 그즈음 누군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보내주었던 녹음본을 틀어보았습니다. 동화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지만, 정작 내가 하는 말을 듣지는 않았다>>는 문장을 듣는 순간 어쩐지 웃음이 터졌습니다.
모든 언어를 좋아합니다. 언어란 제게 무엇이 더 좋고 덜 좋고 없이 똑같이 매력적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의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환상과 환장의 반복일지도 모르지요. 과신과 자학도 반복하는데요. 가끔은 이 세계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고민합니다. 모두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또 촘촘히 세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계선은 분명히 존재하고 저는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없습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오직 읽고 쓰는 행위뿐이라는 생각이 굳어갑니다. 세상에 대해 평생 고민하고 무수한 노동 끝에 얻어낸 깨달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리한 그런 느낌의 글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분석에 분석을 더한 방법론, 문장마다 각주가 붙어 있다면 더욱 몰입하곤 했지요. 피를 토해내고 있는 글이라고 할까요. 입버릇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을 살겠다고 말하지만 실상 제가 얻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앎 그 자체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고, 개중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저는 그런 것이 궁금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현실에 없고 그래서 저는 자꾸만 그만두고 싶다네요.
무한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정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서리에 몸을 붙여야 안심이 되던 유년은 아득하고 지금의 저는 항상 뒤섞인 타의와 자의를 핑계 삼아 여러 군데 걸쳐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을 그 무엇보다 갈구하면서도 끝끝내 밀어내는 힘만 작동하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곳에 있어도 저곳에 있어도 저의 세상은 왜 이리 시끄러운지요. 그리하여 어디도 속하지 않게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