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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할게요.

치매 엄마의 보호자가 될 차례입니다.

by 공감수집가

기억력의 명암

남들보다 조금 나은 능력이 하나 있다면 바로 기억력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흘려듣고 숫자에도 참 약하지만, 가족·친구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십수 년이 지나도 잘 잊어버리지 않는 편이다. 자랑할 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좋았던 기억만큼 좋지 않았던 기억도 고스란히 간직하는 덕에, 그때 그 시절 생생한 감정에 잠식당해 밤잠을 설치며 이불킥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요즘에는 내 기억력에 감사하다.

여덟 살 때의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와닿는 조언을 할 수 있다. 대학 신입생의 설렘, 첫 출근의 낯섦을 아는 사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선배가 되었다. 몇 달 전 아내가 스치듯 던진 고민거리를 기억해 두었다가 해결해 두면 화들짝 기뻐하는 모습은 덤이다.

무엇보다 엄마와의 추억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치매 판정

만 66세 여름, 엄마는 치매 초기 판정을 받으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지난 몇 년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을, 이제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엄마의 행동이 이상했다. 짧은 시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없던 약속을 위해 지하철까지 타시곤 했다. 결정적으로 즐기던 요리도 안 하고, 음식 맛도 변했다. 치매안심센터,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녀봤지만 확진은 없었다. 3년 동안 의심만 한 채 치매 판정만 미뤄졌을 뿐이다.

대체 왜? 무엇이 문제였을까?

평일 내내 스포츠 댄스, 점핑 운동을 하시고, 몸에 나쁜 음식은 피하셨다. 오랜 직장 생활을 퇴직한 후에도 쉼 없이 일을 해오셨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생긴 건망증 정도로만 여겼다. 사실 이직, 이사, 육아, 개인적인 공부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던 때이기에 안심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병원이 왜 필요하냐"라고 되묻던 어머니.

판정 당일 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식사하던 그때.

다섯 살 적 기억부터 엄마가 손자를 처음 안았던 때까지, 기억이 머릿속을 온통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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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차례

세상에서 나의 화를 가장 잘 받아준 가여운 분.

내게 한없는 사랑을 알려준 당신을 나는 어떻게 대했는가.

말이 안 통한다고. 같은 말을 또 한다고. 혼자서 해결 못 하신다고.

세상 가장 든든한 편인 엄마에게 핀잔만 주었다.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맘먹고 또 후회하고, 장문의 문자로, 꽃다발에 카드 한 장으로 때우면 충분한 걸까.

중요한 건 이벤트가 아니라 평소에 엄마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트렌드도, 주민센터 행정 업무도, 노후 준비도 서투른 어머니이지만 저보다 더 큰 포용력과 사랑이 있다. 아이를 닦달하고 다그치는 우리 부부보다 더 현명하다. 세상 모든 할머니가 손자를 대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 나를 대했던 기억들로부터 깨달은 사랑이다.

"배운 게 없어서,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당신이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제 내가 그녀의 보호자가 될 차례이다.

엄마가 사랑했던 것들을.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따뜻함을.

엄마는 잊어도 괜찮아요.

제가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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