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 친구가 떠났습니다.
참 좋아하던 친구였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인데 학교 다닐 땐 그리 가깝지 않았으나 졸업하고 급격하게 친해졌어요.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갔고, 군대에서 편지를 수 십통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임의 구타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 구타하던 선임이 영창을 갔다는 이야기, 본인 또한 보직을 변경하여 취사병이 되었다는 이야기, 오징어무침을 못한다고 또 구박을 받았다는 이야기, 이젠 오징어무침 따윈 뚝딱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 등등 친구와의 편지 속 이야기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어김없이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가 군생활을 약 1년 정도 하였을 때 제가 입대를 했고, 내가 절반 정도 군생활을 하였을 때 친구는 전역을 했죠. 이젠 처지가 바뀌어 내가 휴가를 나가면 또다시 술을 진탕 마셔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름 힘든 시간을 아주 재밌게 보냈습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만났습니다. 나는 서울에 있고 친구는 부산에 있었지만 부산에 갈 때마다 친구를 만났죠. 그렇게 우린 참 친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 잘 지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습니다. 내가 친구보다 빨리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친구 또한 결혼을 했으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아이를 가질지 말지도 고민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는 친구를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러다 결혼 한지 약 5년 만에 남자아이를 낳았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네 놀러 가면 아이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이 보였습니다.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난 지 4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 데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통화를 자주 하는 친구인데 그날 따라 목소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더군요. 전화를 먼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 아산 병원에 간다고 합니다.
마중을 나갔고 함께 병원을 갔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서울에 올라왔고, 다행히 외과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여, 암세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외과 수술을 받고 친구에겐 약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습니다. 친구는 그 시간 동안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약 1년 반 뒤 암세포가 재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과 수술을 한 번 했던 지라 이제는 약물 치료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첫 약물이 효과가 없어 의사가 다른 약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이 약이 효과가 없으면 길어봐야 6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답니다. 의사가 그리 말한 걸 친구가 가고 나서 한 참 뒤에 알았습니다. 두 번째 약물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친구는 자다가 말없이 그렇게 떠났습니다.
친구가 가끔 생각이 납니다. 그 친구와 있을 땐 항상 마음이 편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그 친구 주변 사람들은 항상 그 친구와 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베풀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항상 먼저 주려고 했죠.
친구는 항상 제게 용기를 주는 말, 좋은 말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친구가 해준 말들이 가끔 불현듯 저를 찾아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구의 '죽음' 자체가 제게 전하는 메시지가 가장 울림이 컸습니다.
돌이켜보면 친구 덕분에 술도 담배도 끊어낸 것 같습니다.
친구가 가고 나서 회사도 여러 차례 이직을 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매일 책을 읽고 명상을 합니다.
친구가 내게 말로는 전하지 않았지만, 저는 친구와의 이별을 통해 몇 가지 생각을 얻었습니다.
저 또한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 현재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일 수 있다는 것, 생각 보다 시간이 짧은 수도 있다는 것,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선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것 등입니다.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억지로 참아내는 삶이 아니라 매 순간 도전하고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남들이 알려주는 길 보단 오직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 등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내가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친구에게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마 친구는 이런 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살아라. 그걸 지금 누가 알겠노?"
친구가 가끔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구가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을 실천하며 친구를 기려야겠습니다.
친구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