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빠르고 휘발성이 강한 시대에 살고 있다. 휘황찬란한 자극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뮬레이션 같은 세상에 로그인을 하고, 스마트폰을 켜는 동시에 데이터를 다운로드한다. 가상의 데이터가 일러주는 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SNS라는 데이터 전송 시스템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인지된 세상을 나도 모르게 나의 삶과 비교하며 살고 있다. '나도 언젠간 저리 살 수 있을 테야'라는 쓴 알약을 매일 물 없이 삼키고 있다.
20-30분짜리 영상이 10-20초짜리 숏폼 형태로 바뀐 지 오래다. 10-30초 영상을 매일 몇 시간씩 들여다보다 보니 '짧고 강한 것'에 중독되었다.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고 지루한 것은 우리 삶에서 사라져야 할 구태다. 반응이 느리고 옛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꼰대'가 되었고, 꼰대는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이다. 이대로 간다면 느리고 지루한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빠르고 톡 쏘며 한 방에 전기 신호를 보내는 것만 살아 남고 더욱 정교하게 진화할 것이다. 매트릭스 영화에서 빨간 원피스의 금발의 섹시한 여자가 생각난다.
이러한 짧고 강한 것들에 둘러 쌓인 우리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인플루언서라는 롤모델은 우리의 삶이 노잼이라고 말한다.
가치 없는 너의 삶에 가치를 보태기 위해 무엇이든 사라고, 가지라고, 하라고 한다.
자유를 자유하라고 닦달한다.
끝없이 남들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라고 한다.
그렇게 우린 느린 일상의 기쁨을 강탈당했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기능이 마비되었다.
죄다 가지지 못한 것, 부족한 것만 보인다.
결핍감은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커져간다.
결핍을 먹고 자란 시장은 오늘도 무한히 '성장'하고 있다.
다시 그 안에서 인플루언서가 탄생한다.
그렇게 탄생한 인플루언서는 또 다른 결핍을 부추기며, 광대놀이를 한다.
스크린 속의 광대를 보고 울고 웃던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슬픈 눈으로 광대를 바라본다.
나는 왜 저리 되지 못할까...
똥밭에 뒹굴어도 내 삶이다. 자유롭게 나의 자유를 허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자유가 무엇인지는 한 번쯤은 들여다볼 일이다. 당신이 믿는 자유가 당신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자유라는 허울 좋은 바다에서 언젠가 한 번쯤은 내가 어디에 떠 있는지는 보아야 하지 않는가? 나를 직시하는 행위가 너무 벅차고 또 아무리 해도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언제까지 달콤한 사탕만 빨고 있을 것인가. 혹시 내가 충분히 용감하거나 유능해서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과 중요한 부분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잘난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들여다 볼일이다.
나 자신의 인생에, 내 존재에 깊이 귀를 기울여 보자. 있는 그대로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찾아보자. 흥분과 기쁨의 인생만이 아니라 따분함과 고통의 인생을 깊이 바라보자. 어쩌면 인생의 성스럽고 숨겨진 핵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의 길을 더듬고 맛보고 냄새 맡아보자. 그렇게 중독된 핑거질을 멈추고 우리 인생에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