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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스승님, 알고 보니 스무 살 청년!

by 진사이드Jinside

주말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어제 오전 1시간 10분 정도 실내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왜인지 필드를 나가고 싶어 집에서 밥을 먹고 초코바를 주섬주섬 챙겨 나갔습니다.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기에 여럿이서 타는 재미를 모릅니다. 가끔 함께 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인연을 만나기 또한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처럼 혼자 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 혼자 타는 분들을 만나도 저와 그분의 속도가 얼추 맞아야 함께 라이딩이 가능한데 그것 또한 딱 맞는 인연을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늘 혼자 탑니다.


사진: Unsplash의 Diego Rodriguez


장거리를 타고 싶었습니다. 10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시작한 이후 최장거리는 약 75km였습니다. 내년 제가 목표로 하는 그란폰도(장거리 자전거 이벤트)는 보통 100km를 넘기기에 대비도 할 겸 75km 이상은 타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목표는 팔당 대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저희 집에서 출발하면 최소 75km 이상은 되어 보였죠. 저처럼 초보 자린이는 장거리도 장거리지만 길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길을 해매도 괜찮습니다. 75km를 넘기면 목표 달성이니까요.



안양천에서 시작하여 잠실 대교를 지나 열심히 달려 첫 번째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암사고개, 일명 아이유 고개(높은 오르막이 세 개가 있다고 하여 아이유 고개라고 하더군요)를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아이유 고개는 제가 자전거를 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와본 이후 제법 연습을 하였기에 내심 오르막길이 쉽진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하며 신나게 페달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어떤 분이 쌔앵 하고 지나갑니다. 속도가 엄청 빨랐습니다. 무슨 객기가 생겼는지 따라붙고 싶은 마음이 생겨 열심히 페달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속도는 물론이고 중간중간 앞의 장애물이 나타날 때 뒷사람에게 전달하는 손 제스처까지 고수의 냄새가 풀풀 났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지레 겁먹고 쫓지 않았을 텐데 어제는 무슨 깡인지 그냥 냅다 따라붙었습니다. 드디어 아이유 고개에 당도했습니다. 나름 자신감 있게 페달링을 시작하였는데 내 앞의 그분은 고개를 잠깐 숙였다 들었는데 저만치 달아난 뒤였습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오전 운동을 쉴 걸 그랬다며, 핑계를 찾고 있는 새 아이유 고개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그분은 이미 보이지가 않습니다. 고수에게 뭐라도 하나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로 그렇게 넘어가는 숨을 간간히 잡고 왔는데, 그렇게 떠나보내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페달을 밟았습니다.



"어머, 그런데 웬걸, 그분이 천천히 가면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고수인데 스윗하기까지 합니다. 혹시나 저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 다시 터질 것 같은 허벅지를 부여잡고 바짝 따라붙었습니다. 그렇게 제법 오랜 거리를 함께 달렸습니다. 고수가 속도를 늦추더니 저에게 말을 겁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목동이요!"


아... 씨...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는데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대답해 버렸습니다. 순간 흐르는 정적을 빠르게 질문으로 되받았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양수리까지 가려고 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팔당까지만 가려고요!"


"아 그러시군요. 제가 초보라 길도 잘 모르고 해서 가시는 길 방해가 안 된다면 조용히 따라가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팔당 도착하면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하시고 가시죠~!"


"좋죠!"


그렇게 팔당까지 라이딩을 함께 하고 편의점에서 실물을 영접하였습니다. 엄청 얼굴이 앳되어 보여 순간 흠칫 놀랐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탔다고 하니 잠깐 놀라는 척으로 저를 치켜세워줍니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스무 살이고 자전거는 고1 때부터 타서 3년 정도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작을 하였냐고 하니 아버님이 자전거를 좋아하셔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후 맛들려서 신나게 탔다고 합니다. 고3 수능 끝나고는 일주일에 500km씩, 1년에 20000km 정도 탔다는데... 자전거 타시는 분들은 깜짝 놀랄만한 거리지요. 그리고 작년엔 동호인들 중 날고 긴다는 준프로 선수급만 참가가 가능한 MCT(마스터즈 싸이클링 투어) 대회도 나갔다고 하더군요. MCT에 나갈 정도면 일반인들 중에서도 상위 5% 안에 든다고 봐야 할까요? 제가 따라가면서 숨이 턱턱 막힌 이유가 쉽게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기다린 건 비밀로 하고요.



저의 스무 살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정말 부럽다!라는 생각을 잠깐 하고 있는 찰나, 내년 3월 입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럽단 생각은 싸악 사라졌어요� 뚝섬이 집이라고 하여 계속해서 함께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미음나루고개라는 어마어마한 고개를 마주하였는데요. 저 같은 초보에겐 경사도가 너무 높아 거의 벽과 같은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저기 보이는 고개가 미음나루고개예요"


절벽인가? 저길 자전거를 타고 올라간다고?


"정상에서 조금 쉬었다 갈게요~"


정상을 올라가야 쉴 텐데, 도저히 엄두가 안나더군요. 제가 이래 뵈어도 살면서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한 적은 없는데, 처음 포기하려고 했어요. 이 정도 고통이면 포기해도 괜찮을 것 같더군요. 죽을힘을 다해 올라가는데 뒤에서 스무 살 청년이 저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면서 휭휭 소리를 내면서 올라가는데 까~~~~~~암짝 놀랐습니다. 저는 한 바퀴도 겨우겨우 굴리는데 스무 살 청년은... 정말 놀랐어요. 아무리 스무 살이어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하면서 씩씩대며 올라가는 데 정상이 보이더군요. 그렇게 정상에 다다라 머리를 들었습니다. 스윗한 스무 살 청년이 제가 올라오는 동영상을 찍어주고 있더군요. 매번 혼자 자전거를 타서 한 번도 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없는데, 정말 고맙더군요.


"영상 찍었는데, 나중에 보내드릴게요~"


어쩜 스무살 밖에 안된 청년이 저렇게 센스가 있고 친절한가요? 20년 전 저에게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센스와 스윗함이네요. 그렇게 만난 스승님과 뚝섬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필드에서 뛴 거리는 102km, 오전 실내 자전거까지 합하면 약 150km 가까이 달렸더군요. 여태 탄 거리 중 최장 거리라 뿌듯했습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니 허리와 목이 좀 아팠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집에 와서 스무 살 스승님께 다음에 또 꼭 함께 하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3월 입대하기 전까지만이라도 자주 보고 싶네요.



우연히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인연이란 때가 되면 오나 봅니다.

다음에 또 라이팅 할 때까지 스무 살 총각 아니 스승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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