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상 그리고 나

한강 작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노벨상을 받은 문학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또 한 편으로는 여태 한 번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아 놓고 원서로 읽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자체가 거짓이란 생각을 했다.

너무나 가녀리다 못해 위태위태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저 목소리는 자본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세계(異世界) Creature가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진짜 이세계의, 나 같은 속물과는 전혀 다른 생물일 것이다. 그녀가 혹시 나를 봤다면 나는 아마 몸을 비비꼬우며 몸 둘 바를 몰라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그녀가 여태 정성스레 빚어온 자신의 삶이라는 거울에 나의 삶을 비췄다면 시꺼먼 먹구름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한강 작가의 소식을 오다가다 듣고 보길 반복했다. 티비에서도 유튜브에서도 한강 작가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을 소개하는 구절을 듣고 듣다 보면 자꾸만 내 삶이 드러나 알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녀의 말 중, 자신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료들이 만들어준 토대 위에 자연스럽게 탄생했다는 말 등은 참으로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의 말은 단순히 노벨 문학상을 탄 대문호가 사람들 앞에서 겸양을 표현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 나와 같은 사람의 벌거벗은 모습을 전신 거울로 환하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의 책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는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의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읽을 자신이 없어 시집을 하나 샀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라는 시집이다. 오며 가며 지하철에서 읽으며 전혀 감흥이 없는 나를 자책하는 시간이 감동하는 시간보다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한강이라는 이세계 Creature의 뇌세포 약 1000억 개 중 10개 정도는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었다.

노벨 문학상이 신이 내려준 월계관도 아닌데 뭘 그리 수선을 떠냐고 할 수 있다. 한강이라는 작가가 노벨 문학상이라는 대단한 상을 탔다는 것보다 노벨 문학상이라는 상 덕분에 한강을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더욱 중요한 사실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그녀의 메시지와 그 메시지에 묻어 있는 그녀의 느낌을 평생 나는 공감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 외출길에 그녀의 책을 들고나가려고 한다. 이해가 안 되어도 공감하지 못해도 괜찮다. 감동이 없어도 괜찮다.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가 그 책을 통해 새어 나올 것 같은 그 느낌이면 충분하다. 그 느낌만으로도 내 마음은 몽글몽글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