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부러져 있는 이유

자~ 우리 얼굴 한 번 들어보자

by 대충철저
넘어졌는가? 일어나라.
또 넘어졌는가?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라.


많이 듣던 말이다. 그런데 당신... 넘어져서 코가 깨져 피가 줄줄 흐르는데 툭툭 털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일로 인해 크게 상처를 받게 되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무너진다. 즉, 나를 무가치하게 여기게 되고, 이러한 생각은 나를 더욱 파괴해 간다. 술이나 먹을 것 등으로 간단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그때뿐인 잠깐의 쾌락으로 순간의 괴로움을 잊으려 하거나, 정반대로 식음을 거의 전폐하다시피 하며 괴로움을 잊으려 잠만 자려하거나...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실제로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든다.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상처 준 어떤 상황이 나를 무가치한 존재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상처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가 나를 무가치한 존재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있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진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게는 이런 이해가 없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가 아닌 그것 때문이다.

그 사람, 그 상황, 그 일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이다.


내가 괴로운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니 외부가 그대로인 이상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행복은 모두 외부에 달린 것이다.


우리가 정말 툭툭 털고 일어나려면 아래의 사실에 대한 인식이 먼저다.



결국 내가 문제를 만든 것이기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위와 같은 이해가 수반된다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해진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밖에 없다.


너, 그대로 널브러져 있을 거야?
계속 그렇게 살 거야?


답은 정해져 있다.


조금 더 널브러져 있어도 괜찮다.

그러나 이제 얼굴이라도 들어 무릎이라도 세워 보고 싶은 분들은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80% 이상 성공했다.


내 인생의 운전대 내가 잡아보자.

남이 운전해해주는 차를 타고 있는 것은 편하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주지 않을 수 있다.


혹시나 남이 데려다준 목적지가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 목적지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었다면 후회하진 않을까? 거기다 내가 여태 살아온 삶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내가 한 번도 앉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 어떨까?


얼른 당신이라도 깨어나서 당신 삶의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눈을 크게 뜨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늦었다고 해도, 비록 하루를 살아도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한 번이라도 잡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죽는게 후회가 덜하지 않을까?


당장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삶의 운전대를 잡자.

혹시 아는가? 두려워 하던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도 내가 두려워 하던 그것이 아니거나, 오히려 그것 보다 훨씬 멋진 삶을 선물 받을지는 정말 말 그대로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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