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트랜서핑

세상을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

by 대충철저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여태 무엇을 믿어 왔는가?

믿는 대로 살아간다. 세상을 어떻게 믿어왔는가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세상에는 수많은 믿음이 있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믿음,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 지구는 세모라는 또는 네모라는 믿음, 신이 있다는 믿음, 신은 남자일 것이라는 믿음, 신은 여자일 것이라는 믿음, 신은 없다는 믿음 등등 세상엔 다양한 믿음 등이 있고 우리는 그 믿음대로 살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신의 믿음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당신의 믿음이 옳건 그르건 당신은 그 믿음대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당신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건 중요치 않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건 간에 당신은 그 믿음의 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를 믿는다면 그 종교가 짜인 틀 안을 벗어날 확률이 낮고, 어떤 사람을 믿는다면 그 사람이 짜 놓은 판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렇게 믿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정형화하고, 그 믿음에 갇힌 또는 그 믿음에 의해 주조된 사람은 그와 비슷한 삶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믿음은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믿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나를 무어라고 믿느냐'는 더 중요한 문제이다. '나를 무어라 믿는가'에 따라 내가 '믿는 것'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보자.


당신을 여자라 믿는다면 당신은 여자라는 필터로 외부의 믿음을 결정한다. 당신을 남자라 믿는다면 당신은 남자라는 필터로 외부의 믿을 것을 결정한다. 당신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선생님이라는 필터로 외부의 믿음을 결정한다. 당신이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그것이 당신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검사라는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믿음이 결정된다.


그래서 '믿음'은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나는 나를 무어라 믿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photo-1484069560501-87d72b0c3669.jpeg What do you believe who you are?

진지하게 물어볼 때가 되었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믿는가?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을 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왜냐면 당신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삶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믿는가?


어렵다. 나를 무엇이라 믿는가는 사실 나를 스스로 정의하는 작업과 같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왜냐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의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믿는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이 질문은 사실 나를 정의 내려가는 과정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나의 직업을 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행하는 역할을 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평소 주로 하는 행동을 통해 나를 정의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주로 하는 생각을 통해 나를 정의할 것인가?


나는 인재 및 조직개발을 담당하는 H&OD Specialist이다.

나는 7살 딸의 아빠이다.

나는 어느 여인의 남편이다.

나는 어떤 분의 사위이다.

나는 둘째 아들이다.

나는 부하직원이다.


등등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산다. 어렸을 적부터 해온 역할극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 역할과 나를 완전히 분리하여 나를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생활을 할 때에도 백수라는 딱지를 붙이고 역할 놀이를 한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나를 정의 내린 적은 없다. 당시 내가 수행하는 '역할'이 나를 정의 내린다. 그리고 나는 그 역할에 갇혀 그 기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고 그 상황에 맞는 역할이 주어진다.


역할 = 나라는 공식이 여태 나의 삶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믿음'을 믿어왔다.


가령 이러한 믿음 들이다.


열심히 일해야 돈을 벌고 승진하다.

열심히 일한다는 말은 9시부터 6시까지 직장에 있는 것이다.

출근은 빨리 해야 하고, 퇴근은 늦게 해야 한다.

승진을 하려면 줄을 잘 타야 한다.

줄을 잘 타려면 눈치가 빨라야 하고, 정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직장에서 생존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왜냐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결혼을 하면 한 눈을 팔지 않아야 한다.

기저귀 값과 분유값을 시작으로 아빠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아빠는 아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다.

돈을 잘 버는 아빠는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위 믿음이 맞고 안 맞고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태 역할이 요구하는 믿음을 자신에게 강요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역할, 즉 외부의 믿음이 나를 정의 내렸고, 나는 그 믿음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말이 너무 길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한 가지다.


이제 나 스스로 나를 정의하자는 것이다.

나를 무엇이라 믿을 것인지, 그래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내가 스스로 정의하자는 것이다.

수동적 자세와 태도로 외부의 역할이나 상황이 내게 정해준 믿음을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자세와 태도로 나를 관찰하고 내가 믿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도가 나를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꾼다.

그럼 이제 '어떻게'가 남았다.


'어떻게 나를 정의할 것인가?'

'어떻게 나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정의인가?'

'나는 어떻게 확신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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