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상처 받지 말자

우리는 상처 받지 않는 영혼이다

by 대충철저

나는 왜 상처 받는가?

언제까지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상처는 왜 생기고, 어떻게 하면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을까?

또는 애초에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시간이라는 약을 많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든 상처가 아물었을까?

우리 인간은 시간이라는 약을 충분히 먹다 보면 모든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럼 시간 외에는 약이 없을까?


얼마 전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마지막을 아래의 말로 마무리했다.


어쩌면 난 여태까지 완전 잘못 살아왔을 수도 있겠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상처를 받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지난 글(나는 누구인가? 나는 뭔가?)에서 짧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나를 정의 내릴 것인가에 대해 나만의 방식으로 탐구한 글이다.


상처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받는 주체인 '나'를 먼저 탐구하는 것이 순서이다. 나를 모른 채 아무리 '상처'를 논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현상만 있고 본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상처를 받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나'에 대해 안다면, 나는 상처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확신한다.




앞에서 내가 읽었다는 책은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나보다 훨씬 잘 설명하고 있기에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578028

이 책은 제목대로 '상처 받지 않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첫 장에서 저자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 또한 객체를 논하기 위해서는 주체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우리가 여태 믿어왔던 생각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도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도 우리를 정의 내릴 순 없다.


모든 명확하지 않은 것 중에 명확한 것이 딱 하나 있다. 우리는 바로 이 생각, 감정,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가장 확실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 내려 보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의식하고 있는(지켜보고 있는) '의식'이다.


저자는 하나 더 보탠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틀렸다고 말한다. 이 말이 명확히 틀린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반문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존재는 사라지는가?"




여러분은 생각을 멈춰본 적이 있는가?


자 그럼 저자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한 번 멈춰보자.


자, 하나, 둘, 셋!!


생각을 멈췄는가?


생각을 어떻게 멈추냐고?

아무리 멈춰보려고 해도 못 멈추겠다고?


그것이 우리의 현 상태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데카르트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부터 생각을 같이 멈춰보자.

생각을 멈추는 방법은 위 저자의 말에 힌트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의식이다. 즉, 생각, 감정, 행동을 지켜보는 자이며,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의식'이다.


의식으로서 존재해보는 것이 생각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의식으로서 존재한다고?


아래를 따라 해 보자.

먼저 아래 질문을 던져보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가만히 지켜보라. 어떤 생각이 올라오는가? 일단 지켜보라.


그리고 다음 질문을 재빠르게 던져보라.


다음 생각은 어떤 생각일까?

나의 다음 생각은 뭘까?


계속 지켜보라.

내가 다음 어떤 생각을 할지를 계속 지켜보라.




어떤가? 생각이 멈췄는가?

그렇다. 방금 '그 생각을 지켜보는 자' 그것이 바로 진짜 '당신'이다. 방금 당신이 정말 짧게 경험하였지만, 그것은 어느 생각, 감정에 휩쓸린 평소의 당신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인 진짜 당신이다.


여기까지 체험하였다면, 이제 '상처'로 돌아가자.


우리가 만약 평소에도 '의식'으로서, 오직 '지켜보는 자'로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 감정과 동일시되어 하루 종일 이리저리 날뛰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나의 일어나는 생각, 감정 등을 지켜보는 자로 머문다면 어떨까? '상처' 따위가 생길 시간이 있을까?



잠깐 예를 들어보자.


회사 상사가 나에게 무례하게 대했다고 치자.

무례한 행동을 하는 상사에 대한 나의 생각,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냥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 저 새끼 저거.. 저 새끼는 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무식한 인간일까 기분 참 더럽다잉~"


등등의 생각, 감정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생각, 감정이 내가 아님을 알고 분리해 낼 수 있다면? 이걸 해낼 수 있다면 저자가 말한 대로 우리는 상처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걸 확인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당장 해보는 것이다.

지금부터 당장 내 생각, 감정을 지켜보라.

그리고 그 지켜보는 자, 의식이 있음을 인식하라.

그렇게 보다 잠들어라.

그리고 보면서 깨어나라.

그렇게 하루를 살아보라.


그렇게 살 수 있을 때, 진정한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시답잖은 외부에 매번 상처 받아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누군가가 정의해주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남들에 의해 살아지는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진정한 나는 바로 항상 나를 든든하게 지켜보는 의식 그 자체이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나를 그리고 세상을 보자. 그리고 그리 살아보자. 여태 눈을 감고 살았다면 이제는 눈을 뜨고 살자.

아마 새로운 세상이 눈에 보일 것이다.


자,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생각, 감정을 타고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살 것인가?

생각, 감정이라는 칼을 칼집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예리한 칼잡이가 될 것인가?


선택하시라.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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