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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l 18. 2022

취사병은 캠핑에서 어떻게 요리를 할까?

* 이 글은 취사병 출신의 한 아저씨와 캠핑 갔던 이야기입니다. 모든 취사병이 이렇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군대 시절 지극히 평범한 행정병이었지만, 친구들의 군대 시절 주특기는 나름 다양했습니다.  개를 한 마리 기른 적 없지만 군견병이 된 녀석도 있었고(친구들끼리 이 녀석이 하도 술을 마시면 개가 되다 보니 군견병이 된 것이다. 생활습관이 개와 비슷해서 군견병이 된 것이다 등 다양한 추측을 쏟아냈었습니다.), 태어나서 칼질 한 번 해보지 않고, 숟가락만 잘 다루며 대패 삼겹살을 혼자 30인분 먹어 치우던 녀석은 군대에서 짬 제거가 목적이었는지 군대를 취사병으로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봄, 저는 취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녀석과 함께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녀석에게 캠핑을 가자고 유혹을 할 때마다 "더워서 싫어." "벌레 나와서 싫어.", "씻기 불편해서 싫어." "잠자다가 잠시 눈 떴을 때 내쪽으로 침 흘리고 잠들어 있는 네 얼굴을 보면.. 어우 그게 제일 싫어." 라며 함께 캠핑 가는 것을 거절하던 녀석에게 "이번에 나와 캠핑을 가지 않으면 무럭무럭 마이너스 성장 중인 너의 주식 계좌를 제수씨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겠다."라는 협박으로 간신히 함께 캠핑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녀석과 캠핑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대학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와 한 번쯤은 캠핑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녀석이 취사병 출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요리를 못하는 정도를 넘어 요리 재료로 괴물을 연성시키고는 했습니다.


https://brunch.co.kr/@emf241/15

캠핑에서 뭐.. 대충 이런 음식을 만들고는 합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청춘, 그것도 강한 육군을 양성한 경력이 있는 취사병 출신의 녀석은 분명 저보다 요리를 잘할 것이고, 녀석에게 요리를 배운 뒤 다음번 가족들과 캠핑을 갔을 때 아빠가 만드는 음식과 함께 하는 서프라이즈 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친구 녀석은 캠핑 당일 오후에 조퇴하기로 했고, 저는 녀석이 미리 보내준 메모대로 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먹는데 아쉬움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강조하며 내게 삼겹살 2.5KG, 김치, 부추, 탄산수 10병, 그리고 다시다 등 1박 2일 캠핑이 아닌 명절 차례상 차리는 수준의 음식을 장만하라는 녀석이 보내준 메모대로 저는 장을 본 뒤 녀석을 기다렸습니다.


녀석은 오늘 캠핑을 위해 어디선가 스타렉스를 빌려왔고, 저희는 그렇게 캠핑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날은 녀석에게 요리를 배우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새로 장만한 하비 타프를 설치해야겠다는 다른 목적도 있었습니다. 캠핑장에 도착한 뒤 저는 친구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텐트를 치고 타프를 올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나...

제가 버벅대는 모습을 보며 초반의 '내 친구는 캠핑을 많이 다녔으니 멋지게 타프를 설치해낼 거야.' 하는 믿음의 시선은 점점 '이 자식 캠핑 다닌 게 맞아? 오늘 제대로 밥은 먹고 잠은 잘 수 있는 거야?' 하는 불안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타프의 스트링 매듭을 묶지 못하고 스트링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더니 '이제 내가 나설 때가 되었군.' 하며 팔을 걷고 제가 낑낑대던 스트링을 뺐더니 몇 번 휙휙 하는 손동작을 하더니 완벽하게 매듭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 앞에서 풍선쇼를 하는 것처럼 "이것은 8자 매듭, 이것은 나비매듭." 이러며 제 앞에서 매듭 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녀석의 은밀한 취미가 설마 다양한 매듭으로 사람을 포박하고, 촛농을 떨어뜨리는 거 아냐하는 생각을 했지만, 히죽히죽 웃으며 이 끈 저 끈을 들고 매듭 쇼를 하고 있는 녀석을 보니 "저 녀석 한 두 번 해본 거 아니네.." 하며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유튜브에서 15분이면 가능하다는 하비 타프를 분당에서 온 사나이의 치명적인 매듭 쇼를 함께 감상하며 설치했더니 거의 1시간이 넘은 시간이 걸린 끝에 완성할 수 있었고, 텐트와 장비 정리까지 마치니 거의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제 정리도 대충 다 끝났으니, 우리 밥이나 먹을까?"


매듭 쇼를 할 때를 제외하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하품만 하고 있던 녀석의 눈빛이 그 말을 들은 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식사를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숨쉬기 운동을 2분 이상 하면 숨이 가쁜 신생아 체력인 저보다 운동을 더 싫어하고 운동신경이 나무늘보 같은 녀석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냥감을 노리는 세렝게티 초원에서 톰슨가젤을 바라보고 질주하는 한 마리의 굶주린 암사자 같이 민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삼겹살을 구울 준비를 했고, 녀석은 매듭을 묶은 뒤 씻지도 않은 손으로 상추와 부추를 꺼내 다듬고 무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뿌듯한 모습으로 여전히 닦지도 않은 손으로 한 움큼 집어 제 입에 넣었습니다.


"흠.. 뭔가 허전한 맛인데?"


"아! 그것이 빠졌구나. 잠깐만."


그리고 녀석은 다시다를 뜯더니 믹스커피 한 스틱에 들어있는 양만큼을 그냥 부어 버렸습니다. 제가 "아니 상추 무침에 다시다를 왜 넣어!"라고 했지만, 일단 먹어봐.. 라며 몇 번 버무리더니 다시 제 입에 상추 무침 한 움큼을 집어넣었습니다.


과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이 나올까 하는 의문으로 먹었는데, 다시다가 들어가고 난 뒤 맛은 확실히 다릅니다. 다시다를 넣고 나니 상추 무침에서 대관령 한우 꽃등심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맛이 느껴지며 확실히 먹을 만 아니 견딜 만 해진 것 같았습니다.


둘이 먹기 위해 삼겹살 2.5kg를 사기는 했지만, 평소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쫓겨나고 무한리필 참치집에서는 영업시간을 단축시킨 화려한 전적이 있는 친구 녀석을 위해 집 냉동고에서 꺼내온 삼겹살 1kg까지 총 3.5kg의 삼겹살을 먹었음에도 녀석과 저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볶자."


결국 저희는 밥을 볶아 먹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취사병 친구 녀석이 능수능란하게 수저 두 개 만을 가지고 남아있는 아주 조금 남은 삼겹살과 김치, 그리고 조금 남은 상추 무침을 모조리 집어넣고 쓱싹쓱싹 볶기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었을 때 녀석은 "아! 그걸 빼먹었군!" 하며 또 다시다를 이번에도 과할 정도로 쏟아부었습니다.


이번에도 대관령의 한우가 잠시 프라이팬을 스쳐 지나간 듯한 뭔가 오묘한 맛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제가 볶는 것보다는 확실히 맛있었습니다. 물론 이게 녀석의 음식 솜씨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다의 매직인지, 남이 해준 요리는 다 맛있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 중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맛있었습니다.


햇반 4개를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볶아 먹은 뒤, 비어있는 프라이팬만 바라보고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허전하지?"


"응, 배부른 거 같은데 아쉬움도 느껴지네."


"김치찌개나 끓여 먹을까? 라면도 넣고?"


"그래, 2명이니까 라면도 2개!"


"그렇지, 부족함이 없어야 하거늘."

대책 없는 김치찌개.. 다음 날 라면 없이 김치를 먹었습니다. 아직 라면을 넣기 전입니다.

녀석은 바로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김치에 물을 붓자마자 바로 다시다를 쏟았습니다.

이게 김치찌개인지 다시다 찌개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녀석의 모든 요리의 비밀은 바로 다시다라는 것을 뒤늦게 파악했으나 이미 저는 다시다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똥손이라도 다시다와 함께라면 일류 요리사가 될 수 있다는 녀석의 강의를 들으며, 문득 대학 자취 시절 녀석이 유통기한도 확인하지 않은 베지밀에 라면 사리를 집어넣으며 콩국수라고 세뇌시킨 뒤 함께 나눠 먹고 나란히 장염에 걸렸던 추억과, 배고플 때는 찹쌀로 만든 찹쌀고추장을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에 찹쌀고추장을 퍼먹고 배가 아파 뒹굴 거렸던 봉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뿔싸 이 녀석이 이번에는 저를 다시다로 현혹시켰던 것입니다.


이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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