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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l 26. 2022

캠핑에서 만난 귀여운 중년 부부 이야기

# 캠핑은 언제나 맑음


지난봄 캠핑을 갔을 때 겪은 일입니다. 

2박 3일의 캠핑을 예약했지만 급하게 금요일에 급한 일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하루를 포기하고 1박 2일의 주말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새벽에 출발하고 싶지만 새벽부터 텐트를 설치하면 아직 수면 중이신 캠퍼 분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아 오전에 여유 있게 출발해 캠핑장에 도착해 먼저 텐트를 설치하고 함께 캠핑하기로 한 아들의 외삼촌 (저는 그냥 형이라 부릅니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은 나이도 비슷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취미도 비슷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보다 주먹을 부르는 개그코드도 비슷해 만나면 항상 개그 경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으셨지만 저희 아이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끔찍하게 아끼고 재미있게 놀아주곤 하는데, 매주 주말이면 아들도 "이번 주는 삼촌 안 오셔?"라고 물어볼 정도로 삼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편입니다.


아무튼 이번에 도착한 캠핑장의 시설이나 풍경 등 불만이 없었지만, 사이트 간격이 좁은 편이라 텐트를 설치할 때 폴대가 옆 텐트에 닿지 않을까 조심스러웠고, 옆 텐트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다 들릴 것 같은 가까운 거리라 1박 2일 동안 '나도 언행에 신중히 조심해야겠지만, 제발 옆에 오는 캠퍼분들이 조용한 분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형보다 먼저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설치하고 주변에 어느 분들이 왔나 살짝 살펴봤는데, 한쪽은 아직 어려 보이는 아이 한 명과 함께 온 부부가 있었고, 반대쪽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텐트를 다 치고 정리하고 있을 때쯤 부부동반으로 오신 것 같은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커플 두 쌍이 오셨습니다. 저분들 텐트 설치를 마치자마자 술판을 시작해 새벽까지 술판을 시끄럽게 벌이는 거 아니야(지금 글을 쓰며 생각하니 그런 생각 해서 죄송합니다.) 등의 상상과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한 번씩 힐끔힐끔 바라보는데, 저보다 더 그분들은 캠린이로 보였습니다. 거의 새로 구입한 텐트로 예상이 되는데 네 분이 폴대를 들고 왔다 갔다 하시며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계셨고, 남자 한 분이 설명서를 계속 바라보며 지휘를 하시는 데 뭔가 오늘 안에 텐트가 세워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결국 아주머니 한 분이 약간의 성질을 내시며 '그냥 유튜브 보고 하자니까'! 라며 말씀하셨고 네 분이 옹기종기 모여 유튜브를 보며 '아.. 이렇게 하는 거 구나..' 하시는데 웃음도 나고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열심히 1대 4로 텐트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허기가 찾아와 매점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 사고 아이와 먹고 있는데 형이 도착했습니다. 무슨 고기에 한 맺힌 사람처럼 양손 무겁게 고기를 잔뜩 들고 오셨고(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며 어른 2명 아이 1명인데 모두 합쳐 거의 3kg에 육박하는 돼지 목살을 준비해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캠핑장에서는 육식 인간이지만, 이 정도는.. 그리고 상추도 박스채 들고 오셨..) 이런 철저한 준비성은 그저 감사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저는 형에게 이번에 새로 장만한 텐트를 보여드리며,  자랑질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캠핑을 따라다니는 것은 좋지만, 직접 할 생각이 없는 형에게는 하품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였겠지만요. 아들은 삼촌에게 인사를 한 뒤 바로 방방장으로 달려가고, 아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동안 사는 이야기, 영화 이야기 등을 나눴습니다. 어떻게 보면 처가 쪽 형님이라 어색하기도 할 거 같은데, 둘 다 취미가 비슷하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쉽게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방방장에서 실컷 놀고 온 아이가 불멍을 하기 이른 시간인 오후부터 불멍을 하자며 재촉합니다. 옆 중년부부 커플의 자리를 살짝 바라보니 정확히 네 분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아무런 대화 없이 자신의 핸드폰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직감했습니다. 저들은 절대 불륜 커플들이 아니다. 누가 봐도 저분들은 진정한 부부다! 그것도 최소 15년 이상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 한 전우애 같은 열정적인 사랑, 아니 서로를 추앙하는 진짜 부부들인데 말 그대로 아이들의 육아, 교육 지옥에서 잠시 해방돼, 일상에서 벗어나 쉬러 온 분들이다.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불멍을 하는 모습을 슬쩍 바라보더니 그분들도 불멍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희는 불멍을 하면서 고구마도 구워 먹고 아이에게 마쉬멜로우도 구워주며 나름 캠핑의 낭만적인 불멍 다운 모습을 연출했는데, 저분들은 불멍을 하시면서도 네 분 모두 눈빛으로 장작을 태우려는 의지를 보이시며 침묵의 불멍을 계속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아주머니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자녀분에게 전화가 온 듯 싶었습니다.) 


"짜장면 시켜 먹는다고? 알았어. 오빠랑 시켜먹어." 


잠시 후 다시 그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뭐? 탕수육도 시켜 먹고 싶다고? 그럼 니 아빠하고 이야기해."


그리고 전화는 멍하니 계시던 아저씨에게 넘어갔고, 아저씨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둘이 먹기에 대 는 너무 양이 많으니까, '소'로 시켜먹어. 알았지? 어허 '소' 면 충분하다니까!"


한 3분 동안 아이와 탕수육을 대로 시키느냐 소로 시키느냐 대화가 오갔습니다. 결국 아저씨의 의지대로 아이들은 탕수육 소(小)를 먹기로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아주머니 전화기가 울립니다. 


"뭐? 엄마 보고시켜달라고? 너희가 애야? 너희가 알아서 배달로 시켜먹어. 엄마가 카드 주고 왔잖아." 


이번에는 주문을 누가 하느냐의 문제로 자녀와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을 보이는데, 안 듣는 척했지만 그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는 저와 형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화를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했는데, 아주 심각한 문제를 두고 대화하는 것처럼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전혀 언성이 높아지거나 짜증 내지 않으시고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며 왜 아이가 배달로 '소' 사이즈를 주문을 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설득하시는 모습이 의외로 너무 웃겼습니다. 


슬슬 저녁이 되어 이제 고기를 다 같이 마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상추를 씻어오는 것을 제외하고 특별하게 준비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숯불 붙이는 것은 어린 시절 불장난으로 초가삼간을 불태울뻔한 경험이 있는 전직 버닝키드인 제가 있기에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들 또는 구이바다에 구워 먹는 목살도 맛있지만, 역시 두터운 목살은 숯불에 은은하게 구워 먹는 게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호주산 안심만을 고집하던 아들도 오늘만큼 음 목살이 맛있는지 계속 빨리 고기를 달라고 배고픈 아기 새처럼 재촉합니다. 


저희가 맛있게 구워진 목살을 먹는 동안 옆 텐트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저녁 준비를 하시는 것 같은데 네 분이 모두 일어서서 분주하게 움직이십니다. 어떤 분은 각종 채소를 씻으시고, 어떤 분은 찌개를 끓이시는 것 같은 모습 그리고 한 아저씨는 타고 남은 장작에 고기를 구우시겠다고 고군분투하고 계셨습니다. 뭔가 정신없게 움직이시는 데 표정들은 모두 해맑아 보입니다. 하긴 저도 처음 캠핑을 시작했을 때 집에서 챙기지 않아 놓고 오는 것도 많았고, 밥 한 끼 먹으려면 무슨 큰 행사를 치르는 것처럼 와이프와 분주하게 준비했던 예전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아이는 텐트 안에서 미리 준비해온 로봇파워 3단계 조립을 시작했고, 저와 형은 다시 불을 바라보며 맥주 캔 하나씩을 비우며 오후에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다시 나눴습니다. 


옆에 있는 부부 분들도 이제 식사와 설거지 등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넷이 모였으니 할 건 그거밖에 없네.'라고 하셨고 그 아주머니의 남편으로 보이는 분께서 '캠핑장에서 그걸 해도 될까?'라고 하시자 아주머니는 다시 '다른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하면 되지'라고 하십니다. 형님과 대화는 하고 있지만 자꾸 그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는 4명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할 수 있는 그것의 정체가 계속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007 빵, 369게임, 마피아 게임? 젠가? 부루마블? 도대체 4명이 조용히 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궁금증은 잠시 뒤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준비했어?'라는 다른 분의 질문에 아주머니께서는 '난 여행 갈 때는 항상 꼭 들고 다녀.'라고 말씀하셨고 4명이 조용히 할 수 있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화투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고스톱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무거운 표정으로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의 표정이 마치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다 시원하게 한 방 뚫으신 것처럼 표정이 밝아지며, '이제 뭐 할 것도 없는데 좋지!'라고 하십니다. 


4분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시더니 한 분씩 줄 서서 조용히 텐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잠시 후 크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화투를 섞으며 아래위로 치는 영화 타짜에서 많이 들어본 "탁탁탁" 소리가 나자 한 아저씨께서 "쉿! 조용히 해 캠핑장에서 누가 도박한다고 신고하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하시자 그 "탁탁탁" 소리도 더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저는 설마 이 분들이 말로만 듣던 전설의 부부 도박단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캠핑장에서 화투 치는 분은 물론 예전에 몇 번 보기는 했는데, 4명 인원을 맞춰 온 것도 그렇고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화투를 치는 모습을 보며 '설마 잡히지 않으려고 캠핑을 가장한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이 열리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잠시 후에 사라졌습니다. 한 판이 끝나고 나자 작은 목소리로 3점이니까 50원! 적었다가 천 원되면 주는 거라는 말에 이 분들은 캠핑을 오셔서 친목으로 고스톱을 즐기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와 형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화로의 불을 바라보며 멍하니 옆 텐트에서 속삭이는 도박 현장의 생생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보.. 당신이 죽어. 나 이번에 패 좋아."


"나도 패 괜찮아. 당신이 죽어."  


서로에게 죽으라고 권유하는 살벌한 부부의 대화였습니다. 만일 '패'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다급하게 112 신고가 필요한 상황의 대화 같습니다.


"근데 몇 장부터 피박 면하는 거지?"


"흔들었어. 나 흔들었어. 이거 똥이지?"


"근데 고스톱은 같은 카드 4개 모으면 보너스 이런 거 없어?"


"쌌네 쌌어!!" (이때 큰소리를 낼 거 같으니 입을 막고 거의 읍읍... 거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다 같은 새라고 고돌이가 아니라니까.."


아마도 네 분 중 최소 두 분은 고스톱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았는데, 이 분들 고스톱 치는 소리가 너무 재미도 있고 귀여웠(?)습니다. 그리고 워낙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셔서 전혀 저희 텐트에 방해되지 않았고요.


다음번에 저희도 어른 4명이 캠핑을 가게 되면 꼭 화투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한 캠핑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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