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핑은 언제나 맑음
여름은 캠핑 다니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모기, 나방, 파리는 물론 이름이 궁금한 다양한 곤충들이 우리 곁을 떠나질 않습니다. 기상청도 예측하지 못한 폭우 또는 강풍을 아주 시원하게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캠핑하기 가장 좋은 계절(?) 여름에는 휴가철도 겹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캠핑장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초보 캠퍼 시절 (물론 지금도 저는 초보이고 앞으로 영원히 초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를 구원해주신 망치의 신 토르 아저씨도 여름에 만난 분이고, "먼지가 되어" 노래를 2박 3일 부르던 아저씨도, 캠핑장에서 여성 둘이 온 캠퍼에게 추근대는 술 취한 아저씨들을 보며 말려야 하나 장작으로 뒤통수를 한 대 쳐주며 제정신 차리게 도움을 드려야 하나 고민했을 때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설의 주먹 3인방을 만났던 것도 지금같이 더웠던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기도의 모 캠핑장에 갔을 때 일입니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옆 사이트와의 간격이 너무 좁아 이번 캠핑에서는 다양한 애로사항이 화려하게 꽃 피우는 애로틱한 캠핑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텐트를 설치할 때 행여나 옆 사이트를 넘어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스릴감을 느끼며 신중한 자세로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사이트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한쪽 옆은 주차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저보다 조금 더 연배가 있어 보이는 아저씨 세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인자한 모습의 슬램덩크 안 감독님 같았고, 다른 두 분은 토토로 형제처럼 인형같이 귀여운(?) 몸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 분은 그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 뜨거운 숯불 앞에서 흐뭇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쉬지 않고 먹고 있었습니다. 저희 폴대가 살짝 넘어갈 때도 제가 눈치 보며 사과했을 때 인자하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이 캠핑장 사이트 간격이 좁아서 어쩔 수 없죠. 허허허.. " 하며 이해해주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이번 캠핑, 비록 캠핑장은 비록 사이트 간격이 좁고 시설에 대한 만족도는 낮은 편이지만, 이웃만큼은 좋은 분들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낮에 아이와 물놀이를 하고, 저녁에는 고기를 간단하고 빠르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밤 산책과 여름 밤하늘의 별구경을 마친 뒤 매너 타임이 되었을 때 내일의 캠핑을 위해 누웠습니다. 아이는 옆에서 내일 무엇을 하고 놀지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저는 잠들려 하지 않는 아이를 작은 목소리로 타이르며 재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매너 타임이 시작되니 그동안 띄엄띄엄 들리던 옆 텐트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무삭제 풀 버전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저씨는 다양한 욕설과 폭력 그리고 날마다 '죽여 버린다'라는 살벌한 살해 위협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고등학교에서 주먹 하나로 온 학교를 제패하고, 매일같이 지존의 자리를 위협하는 도전자들을 '지치지 않는 근성' 단 하나로 무찌르고 지존의 자리를 굳건히 3년간 지킨 잠실 굴다리 무패의 사나이였고,
두 번째 아저씨는 '마천동 살수'라 불렸던 초등학생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조용히 지내던 무림의 은둔 고수였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약자들에 대한 폭력과 갈취 등 일진들의 전횡을 참지 못하고 은둔 생활을 끝낸 뒤 일진에게는 우정 어린 참교육을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약한 친구들에게 진정한 정의를 몸으로 보여준 이 시대의 진정한 협객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아저씨... 이 아저씨는 긴 말 하지 않으셨습니다. 눈빛만 봐도 사람들이 알아서 자신을 피했다고 하시며 "너희 눈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 있냐, 난 눈빛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 남자는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동안 안 감독님과 토토로 아저씨들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마지막 눈빛 아저씨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 아저씨들의 내가 바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맨 오브 더 맨 이다!"라는 대화 매치는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저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친구'보다 더 강렬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격동의 90년대 학원 폭력물의 생생한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듣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맨 중의 맨은 "휴 잭맨"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내게 맨 중의 맨은 바로 "눈빛 맨"이라는 것을요.
전날 격렬했던, 그리고 전투 같은 대화를 나눈 아저씨들의 흔적은 텐트 앞 무수히 쌓여 있는 술병들이 대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스스한 머리와 술에 덜 깬 모습으로 텐트 주변을 정리하는 토토로 아니 아저씨들을 향해 강렬한 눈빛으로 묻고 싶었습니다.
"아저씨.. 그런데 눈빛 맨은 세 분 중 누구십니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