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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l 21. 2022

두 남자의 화끈했던 캠핑

# 캠핑은 언제나 맑음

비가 내리는 아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비도 내리는데 집에서 뭐해? 캠핑이나 갈까? 하며 제게 연락한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열심히 집에서 바깥양반의 내조를 하고 있고, 친구 녀석 또한 1인 회사를 경영 중이기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이 녀석 또한 제가 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평일 캠을 즐기고 싶었지만... 오늘 저녁 공사다망하신 바깥양반의 외부 약속이 있어 아이 저녁을 먹이고, 구몬을 시켜야 하는 등 일이 많아 캠핑을 갈 수는 없습니다.


이 친구는 캠핑 장비를 은밀히 야금야금 하나둘씩 장만하더니 지금은 감히 "캠핑 갈래?"라고 제안할 정도이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캠핑을 Kamping라고 쓸 정도로 캠핑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녀석인데, 제가 두 번 캠핑장으로 끌고 가 캠핑 인큐베이터에 집어넣었더니, 지금은 혼자 젖병을 물고 다니는 아이처럼 혼자 텐트 치고, 밥 정도는 해 먹고 오는 캠핑 신생아는 된 것 같습니다.


친구와 처음 캠핑 갔을 때의 일이 기억에 남는데,


이 친구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뇌와 입이 별도의 신경으로 돌아가는 건지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 선택 등 실수를 가끔 하는 편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래도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마쳤고(본인 주장), 직장 생활도 잘 해내더니(이것 역시 본인의 강력한 주장) 당당히 독립을 하고 지금은 대표 위치까지 올라섰다는 것입니다.



그 녀석의 말실수 중 캠핑과 관련된 몇 가지 예를 들면 제가 "알베르게" 텐트를 샀다고 자랑했을 때 녀석은 며칠 후 연락해 "너 알게몰게 텐트인가 그거 괜찮냐?"라고 묻습니다. 예전에는 이 녀석이 오답 퍼레이드를 펼칠 때마다 빨간펜 선생님처럼 친절히 정정해줬는데, 이제 그것도 귀찮아서 "너 모르게 알게몰게 텐트 잘 있다."라고 대답하고 맙니다.



그 외에도 자충 매트를 자동 매트, 키친 테이블을 치킨 테이블, 폴딩 박스를 폴더 박스 등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뇌를 가졌거나, 순수한 멍청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다시 캠핑 이야기로 돌아와, 여름부터 같이 한 번 캠핑을 가자라고 했지만 둘이 시간 맞추기 쉽지 않아 계속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날씨가 추워지는 11월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슨 객기였는지 아니면 추위에 도전하려는 사나이의 패기였는지 난로와 전기장판도 없이 핫팩만 들고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녀석은 캠핑을 '시작할까 말까' 간을 보고 있던 상황이었고, 저는 캠핑으로 입문시키기 위해 녀석의 마음속에 유혹의 팩질을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캠핑장을 향하는 차 안에서 저는 캠핑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운전을 했는데, 녀석은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며 들은 체 만 체 잠에 들었다 깼다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캠핑을 직접 경험하면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녀석이라 아마도 저보다 더 캠핑의 매력에 푹 빠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제 예상은 적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짐을 내리고 텐트를 치고, 장비를 하나씩 설치할 때 녀석은 텐트 및 장비들의 이름을 물어보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처분하고 없지만, 대략 이렇게 예쁘게 생긴 텐트입니다.

"그런데 이 텐트 이름이 뭐라고?"



"미니멀웍* 구아바 플러스"



"아 미니멀리즘, 회사 이름 좋네. 요즘 시대에 딱 맞네."



"미.니.*.웍.스, 함부로 남의 회사 이름 개명하지 마."



"미*멀웍스나 미니멀리즘이나 뭐. 거기서 거기지."



저는 속으로 너나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글도 못 읽냐 이 무식한 녀석아..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캠핑 신생아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면 "흥! 나 캠핑 안해!" 라고 할까 봐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여행을 많이 다닌 녀석이라 그런지 캠핑 특유의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한 것은 물론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캠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함께 산책도 하고(손 잡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불멍을 하며 의자에 앉아 (서로 각자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같은 의자에 절대 앉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자녀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캠핑 용품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일단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게 접어지는 의자는 얼마나 해?"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인데, 헬리*스 같은 건 15만 원도 넘지"



"그렇군.."



그러면서 녀석은 잠시 후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의자 브랜드 뭐라고 했지? 헬리혜성?"



2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녀석은 '헬*녹스'를 '헬리혜성'이라는 새로운 갤럭시한 브랜드 명으로 개명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헬리*스'가 천체 망원경 브랜드도 아닌데요. 저는 친절하게 "헬리혜성"은 76년마다 지구를 찾아오는 혜성이고 이 의자의 브랜드는 "헬리*스"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아하~"라고 하면서 "근데 이 의자 종류가 뭐라고 사바하?"라고 묻습니다.



'헬리혜성'에 이은 '사바하'까지 순간 딥 다크 한 빡침이 제게 찾아왔지만, 저는 이 녀석을 캠핑으로 인도해야 했기에 친절하게 또 정정을 해줬습니다.



"사바나는 영화고 이 의자는 사바하 아니 아니.. 사바하가 영화고 이 의자는 사바나, 사바나 체어라고!!"



강력한 갤럭시 최강의 바보와 함께 있으니 저까지도 바보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말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녀석은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그렇게 너도 서서히 바보가 되는 거야"라는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하계 최고의 바보와 함께한 첫 날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녀석은 아침의 여유를 즐기며 커피를 마시겠다고 제게 '그것'의 위치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야! 커피 좀 타 먹으려고 하는데 스티브 어딨어? 스티브"



스티브? 잠깐 이번 캠핑은 우리 둘이 왔는데, 이 녀석 나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이트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어봤죠.



"야! 스티브는 또 누군데?"



"아오.. 그거 있잖아. 요리하고 물 끓일 때 쓰는 작은 가스레인지 있잖아."



녀석이 애타게 찾던 것은 바로 스토브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찾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스티브로 강제 개명당할 뻔한 스토브 위에 물을 끓인 뒤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캠핑장의 아침 경치를 바라보며 녀석은 말했습니다.



"이렇게 여유 있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니 아주 '여유자적' 하고 좋구나~! 하하 핫."



녀석의 충격적인 만행에 저는 잠이 번쩍 깨 말했습니다.



'유유자적'이겠지.."



녀석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제게 "유유자적"이 아니고 여유 있게 있는 거니 여유자적이 맞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희 아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구몬 기초한자부터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그래 니 맘대로 '여유자적'이라 하든 '우유자적'이라도 하든 알아서 해라"라고 저도 포기했습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캠핑에서 미니멀리즘, 헬리혜성, 사바하, 스티브 까지 (몇 개 더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도 않습니다. 저도 바보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다양하고 새로운 캠핑 용어를 천지 창조하는 캠핑계의 미켈란젤로가 되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캠핑을 다녀온 뒤 다른 친구들의 캠핑이 어땠냐? 11월인데 밖에서 자는 게 춥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녀석은 "하나도 춥지 않고 괜찮았다. 오히려 우리 둘이 화끈했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저 두 녀석이 도대체 1박 2일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화끈했을까' 하며 우리를 추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화끈하게 보낸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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