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성이 Aug 11. 2022

아이와 단 둘이 '해수욕장 캠핑'

# 캠핑은 언제나 맑음

그동안 캠핑을 다니며,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던 폭염의 바다 캠핑을 한 번쯤 가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다녀온 사람들에게 들었던 여름 바다 캠핑에 대한 고생담 (매너 타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변가는 24시간 야시장 분위기다. 그리고 모래, 습기, 바람 등 때문에 힘들다.) 때문에 여름 바다 캠핑을 주저했는데, 한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귀여웠지만, 지금 제 눈에 넣는다면 오동나무 코트 또는 최소 중환자실 직행할 정도로 장성한 아드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해수욕장 캠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캠핑 장소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캠핑장이었는데, 몇 개월 전에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곧 다가올 태풍 뉴스 때문인지 저희가 묶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그렇게 저와 아들은 3박 4일 일정의 무모한 해수욕장 캠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양양까지 가는 길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항상 1시간 30분 이내 거리의 경기도 인근의 캠핑장만 다녔는데, 캠핑을 위해 이렇게 먼 거리는 떠나는 것 또한 처음이었습니다. 탁월한 레이싱 실력을 가진 자칭 "스피드 레이서" 와이프가 함께 했다면 운전하며 지치지는 않았을 텐데, 와이프는 회사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 없었고 11년 후에나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아들과 단 둘이 떠나는 것이라 저 혼자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시간 혼자 운전을 하다 보니 체력, 정신적으로도 지쳤지만, 자신을 바다로 특급 배송해주리라 믿음을 가진 아들을 보며 레드불의 힘을 빌어 간신히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캠핑장, 빠르게 텐트를 칠 생각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딱한 사정도 모르는 아들은 해수욕장이 보이는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고, 저는 그런 아들을 포획하기 위해 함께 바다로 달려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저 아버지와 아들은 바다에 온 게 너무 행복한가 보다! 보기 좋네!"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저는 '저 아이를 빨리 잡아 질질 끌고 나와 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혀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이를 붙잡으러 따라 들어간 바다에 해맑게 저를 바라보며 웃으며 바닷물과 모래를 뿌리는 아들을 보니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오고 텐트 칠 생각, 아이를 수영복으로 갈아입힐 생각은 사라지고 '에라 모르겠다. 놀자!'라는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빤쮸 속으로 모래가 들어가든 말든 함께 서로를 동해 바닷물로 염장시키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위험해!, '더러워!', '다른 사람들 방해하지면 안돼!' 이러며 아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적어도 이번 캠핑에서는 네 마음대로 실컷 놀아봐!" 그 말을 하고 있는 제 입에 아들은 어디선가 주워 온 미역인지 해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래도 참아야죠. 나중에 이 자식도 제 나이가 되었을 때 손자이자 녀석의 아들 또는 딸에게 똑같이 당했으면 합니다. 미래의 내 손자야! 너만 믿는다. 꼭 할아버지의 복수를 해다오.


체온보다도 높던 37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최고로 더웠던 그날, 온몸으로 냉면 육수를 생산하며 텐트를 쳤습니다. 그래도 옆에서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작은 캠핑 장비를 하나씩 옮겨주는 아들을 보니 이제는 든든하기도 합니다. 천천히 설치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져 아들과 약속한 고기는 먹지 못했지만,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을 함께 저녁으로 먹으며 이번 캠핑 기간 동안 우리 뭐하지 하는 이야기를 하며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대로 해수욕장 근처 캠핑장은 늦은 밤이 되어도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피곤했던 저희 부자는 말 그대로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사람들의 발소리에 저희는 강제 기상하게 되었고, 알에서 나온 거북이 새끼도 아닌데 일어나자마자 바다로 달려들려는 아들을 말리며, 간단히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동안 산 또는 계곡의 캠핑장만 다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도 좋은 경험인 것 같습니다. 간혹 모래가 씹히긴 하지만 여긴 '바다'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전날의 뜨거운 햇살과 다르게 둘째 날은 태풍 소식이 있어 태양은 강렬하지 않아 오히려 해수욕을 즐기기 더 좋았습니다. 아들과 사이좋게 바닷속 모래에 손을 넣어 조개도 잡고 잔잔한 파도에 몸을 맡기며 바다를 즐겼습니다. 텐트 안에 질식사 체험을 하다 바다로 나오니 햇볕이 내리쬐도 오히려 더 시원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텐트 위아래로 그늘을 만들고 서큘레이터를 열심히 돌려도 바다에서만큼 시원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캠핑에서의 추억은 아침에 일어나 아주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바다에서 놀다 오후에는 양양 근처 드라이브를 다니다 배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유명한 관광지에 들려 아들을 방목하고 잡으러 다니는 게 전부였던 거 같습니다.


아들을 계속 따라다니고 지켜봐야 해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사진도 거의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번 해수욕장 캠핑은 나름 제게는 좀 색다른 캠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여름 해수욕장 캠핑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팁을 드리자면


1. 날씨가 조금 흐리기는 했지만, 정말 더웠습니다. (물론 바람은 시원하게 불기도 합니다.) 만일 흐리지 않고 날이 화창했다면 강원도의 유명한 게찜처럼 서울산 부자 찜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더위를 꼭! 대비해서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2. 해수욕장 캠핑장에서는 매너 타임은 포기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휴가기간이고 관광지이다 보니 이해합니다.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들의 발소리, 말소리 많이 시끄럽습니다. 물론 매너 타임이 잘 지켜지는 캠핑장도 있을 겁니다.


3. 다시는 해수욕장 캠핑을 아들과 단 둘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원래 계획은 사진도 많이 찍으려 했는데, 바다를 보고 흥분한 아들을 살피는데 사진 찍을 시간도 없을 정도입니다. 일반 캠핑장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돌볼 수 있는데, 광활한(?) 해수욕장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를 통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네요.


아이와 둘이 해수욕장 캠핑을 계획하신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꼭! 2인 이상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4. 집에 도착해서 어떻게 3박 4일간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않고 놀았냐고 도착했을 때 분노한 와이프에게 혼났습니다. 한 번 갈아입었는데 억울했습니다. 갈아입을 옷은 넉넉히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5화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