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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Aug 12. 2022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 캠핑은 언제나 맑음

먼저 제 인생에서 위치 선정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순간은 군 시절 사단장님까지 한 팀이 되어 옆 사단(그쪽도 사단장님이 함께 하셨습니다.)과 축구를 가장한 두 별들이 참전한 스타워즈가 발발했을 때, 경기 후반 뛰기도 힘들어 우연히 상대방 골대 앞에 멍하니 서 있다 헤딩슛을 가장한 안면 슛으로 승리를 확정 짓는 결정골을 넣고 휴가증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때 비록 쌍코피는 났지만, 피의 대가로 달콤한 휴가증을 얻었죠. 



아무튼 부처님이 일요일에서 오셔서 아주 조금 원망스러웠던 지난 어린이날도 연휴에 있어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가족 단위의 캠퍼분들이 예약을 많이 한다는 키즈 캠핑장을 예약했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캠핑장이고, 황금연휴 기간이라 서둘러 남은 자리 중심으로 예약을 서둘러했는데, 캠핑장에 도착해 사이트를 보는 순간 검색을 조금이라도 하고 예약할 걸 하는 후회가 찾아왔습니다. 



저희가 잡은 자리는 바로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에어바운스, 방방장)의 입구에 딱 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9살 아들은 '와! 우리 자리 정말 좋다! 어린이날 선물?? 선물? 이러며 기쁨의 환호를 했지만, 멍하니 놀이터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와이프를 저는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캠퍼들의 향긋한 체취가 느껴지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옆 자리 또는 화장실 뷰, 이 캠핑장은 내가 지킨다!라는 마음으로 장판교의 장비처럼 문지기 체험을 했던 주차장 입구 자리 등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바로 눈앞에 뷰가 놀이터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가족 구성원 3인 중 1인이 대만족을 하며 행복하니 이건 성공한 거다..라고 했다 사이트에 불만을 가지신 한 분에게 강력한 등짝 스매싱을 맞아 실신할 뻔했습니다. 



평소에도 놀이터 앞자리는 시끄럽겠지만, 아이들 천국인 어린이날 놀이터 앞자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소음이 아침 8시부터 놀이터를 마감하는 밤 8시 30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그 소리치며 노는 아이들 중에 저희 아이도 있었고요. 저도 와이프도 이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마음껏 소리치고 놀 수 있을까 생각하며 어느 정도 포기하고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즐겨 보기로 했습니다. 



캠핑장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아들은 이번에도 새로운 형, 동생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놀았습니다. 저는 아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본 뒤 잠시 주변을 산책하는데 모내기를 마친 논 주변을 걷다 우연히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 멀리서 오셨네." 라며 제게 인사하는 겁대가리를 일시불로 상실한 청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아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아들을 포함한 아이들은 청개구리 한 마리를 보기 위해 제 주위로 몰려들었고, 순간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캠핑장의 핵인싸는 값비싼 희귀 텐트를 가진 사람도 좋은 장비를 가진 사람도 아닌 바로 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아들을 포함한 아이들은 제게 청개구리를 잡아달라 노래를 불렀고, 저는 미리 준비해온 채집통을 들고 아이들을 이끌고 논두렁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제일 앞에 걷고 저를 따라 일렬로 걷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피리 부는 사나이'가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5월 치고 강렬한 햇살이 내려 쬐는 오후 시간에 개구리는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 정대만 같은 아이들은 결코 개구리 잡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를 따라다녔던 아이들 일부입니다. 뒤에도 있었어요..

제가 '더우니 이제 그늘이 있는 놀이터에서 노는 게 어떠니?' 이러면 단체로 '우리 안 더워요!', 이랬으며,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개구리가 나오겠니? 아저씨가 혼자 조용히 잡아오는 게 어떨까?' 이랬을 때는 열명 남짓 하는 아이들이 서로 쉿! 쉿! 하며 침묵을 유지한 채 논두렁을 까치발로 조용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논두렁 몇 바퀴를 돌았을까요. 중간에 멈춰 서서 민들레 꽃을 꺾어 바람에 후 하고 부는 모습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너도나도 저를 따라 논두렁 주위의 민들레를 꽃을 꺾어 후~ 후~ 하며 날립니다. 바람에 날린 민들레 씨앗들은 어디엔가 자리 잡아 새로운 꽃을 피우겠지요. 그때 아이들 사이에서 걷던 아들이 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보며 말합니다.



"우리 아빠도 민들레 같아!"



'그래, 너희 아빠가 너희 엄마만 사랑하는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남자지. 그리고 넌 우리 사랑의 민들레 홀씨 같은 소중한 녀석이고.' 후훗..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찰나 아들은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말합니다.



"우리 아빠 머리도 민들레처럼 바람에 모두 날아가서 대머리다!" 



저는 속으로 '아들이라고 한 놈 있는데, 저놈이 팀킬 아니 불효를 제대로 저지르네.' 생각하며, 다급하게 "아저씨 대머리 아니야! 머리 있어!!"라고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참 영악하고 똑똑합니다. "아! 그래서 저 아저씨가 계속 모자 쓰고 있었구나." "응, 우리 아빠도 대머리라서 주말에 밖에 나올 때는 항상 모자 쓰고 다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얘들아 아저씨가 탈모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아직 반짝반짝 대머리는 아니란다. 이것은 팩트란다. 사실이야. 자꾸 내게 대머리라고 한다면 너희에게 짭조름한 마트에서 파는 고소미가 아닌 명예훼손으로 씁쓸한 맛의 고소를 날릴 수도 있단다.



이 정도 되었으면 흥. 아빠한테 대머리라니 아빠 화났어. 이러며 개구리 잡는 것을 포기할 만도 하지만, 아무런 수확 없이 논두렁을 대여섯 바퀴 돌고 나니 이제 저도 슬슬 '오늘 개구리를 기필코 잡겠다'는 승부욕이 발동했고 결국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청개구리 세 마리를 잡아 캠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개구리를 집으로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아이를 어렵게 설득해 포기시킨 뒤 오늘 밤 하루만 채집통에서 같이 우리 가족과 캠핑하고 돌려보내기로 하고 저희는 저녁을 먹고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내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개구리 놈들이 밤에 계속 개굴개굴 하며 밤새 '당장 내게 자유를 달라!'며 외치며 시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자연의 소리가 좋다며 자기에게는 마치 자장가 같다고 하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소음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저희뿐만 아니라 이웃을 생각해 제가 밤에 나가 다시 방생해줬습니다. 어린 시절 봤던 개구리 왕눈이에서 노래를 즐겨하던 왕눈이 새끼를 왜 그리 투투가 그렇게 싫어했는지 어른이 되어 이해가 됐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저희 텐트에 찾아와 "오빠 놀자! 형 놀자! **야 놀자!" 이러며 저희 아들을 찾았고 저희 아들은 "응 금방 나갈게!" 이러며 평소에 학교 가야 할 때는 잘 일어나지도 않고 입혀줘야 옷을 입던 녀석이 스스로 옷을 입고 양말까지 신고 나갔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아이에게는 캠핑의 힘일까요?


그리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신나는 소리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와이프와 저는 서로를 바라보며 '포기하자. 역시 포기하면 편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캠핑장에 오면 철수하기 전날은 항상 늦잠을 즐기던 와이프는 강제 기상을 경험하며 다시는 이 캠핑장 안 올 거야!라고 했지만 눈앞에 놀이터가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한 아들은 우리 앞으로 매주 이 캠핑장 이 자리 오자!라고 합니다. 이제 저는 모르겠습니다. 둘의 문제는 둘이 알아서 해결하길..



그래도 이번 캠핑장에서 좋은 경험을 하나 했는데, 저희 아이와 가장 열심히 놀던 10살 아이 (저희 아이에게는 한 살 형입니다.)가 철수하는 날 저희 텐트에 찾아와 저희 아들에게 인사하고 저희에게도 공손히 인사하며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개구리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데, 그래도 아이들과 놀아준 보람은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아이 손을 잡고 저희 아이와 함께 놀았던 아이들이 있는 텐트에 찾아가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작별 인사를 시켰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하나둘씩 저희 텐트에 와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이렇게 헤어질 때 아이들과 부모들이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캠핑 다닐 때 아이 손을 잡고 인사하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는 놀이터 앞자리는 잡지 않을 거라 다짐합니다.



즐거운 캠핑 하시며, 놀이터 앞은 꼭 피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리' 그리고 '이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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