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친구와의 첫 캠핑
# 언제나 캠핑은 맑음
* 제가 캠핑 장비를 장만하고 친구를 처음으로 데려간 캠핑입니다. 물론 대학 시절 및 지금보다 젊었을 때 장비라 부를 수 없는 용품들로 야영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장비! 그리고 캠핑장에 친구를 데려간 첫 기억입니다.
* 예전 카페에 비슷한 내용을 썼는데 브런치용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내가 캠핑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숨쉬기 운동조차 버거워하는 네가 금강불괴 수준의 체력을 지닌 사람들이나 한다는 캠핑을 한다고?", "모기만 봐도 덜덜 떠는 너 같은 쫄보가 독사가 나올 수도 있고 반달곰이 불쑥 등장할 수 도 있는 대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는 등의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조만간 캠핑을 때려치우고 말밥마켓에 캠핑 용품을 폭탄 세일하듯 처리할 거라는 녀석들의 예상과 다르게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캠핑을 계속했지만 녀석들의 나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다.
"제수씨가 텐트를 잘 치나 보네."
"남편하고 아이가 캠핑 좋아한다고 제수씨만 무슨 고생이냐."
녀석들에게 나의 캠핑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느껴졌다. 나는 꾸준히 친구들에게 나와 캠핑을 가자!라고 제안했지만 친구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 나이에 너를 따라가서 고생을 일시불로 하고 싶지 않다.'라며 거절했다.
목표는 일단 한 놈.
한 녀석만 데려가서 캠핑의 묘미를 맛보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이 녀석이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 나와의 캠핑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바이럴을 열심히 해 줄거라 믿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녀석은 일단 두뇌회전의 속도가 세발자전거 수준이고, 자연재해 등의 어떠한 재난이 있더라도 고기만 먹여 놓으면 행복감을 느끼며 동네 미용실에 모인 아줌마 네 명 정도는 압살 할 수준의 입이 방정이라 입소문은 확실히 낼 수 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을 섭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기 먹여줄게."
"수입산은 안 먹어. 한 돈. 그리고 네가 구워줘. 난 받아먹기만 할 거야. 설거지도 안 해."
내가 무슨 어미 새도 아니고 나이 40 넘은 녀석에게 고기까지 먹여줘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도 캠핑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시련이라 생각했다.
"콜"
"그리고 물은 에비앙..불란서 직수입으로 준비해줘."
"에비앙 같은 소리 하네, 한국사람이면 그냥 삼다수 쳐 마셔.."
그렇게 녀석을 데리고 간 캠핑장은 집에서 가까운 중랑 캠핑장. 누군가 어렵게 예약했지만 아쉽게 취소한 자리를 1박 2일 운 좋게 잡을 수 있었다.
이 녀석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앞에 밝힌 것처럼 아메바의 두뇌에 바퀴벌레의 놀라운 생존력을 지녔지만 자신을 심하게 그것도 아주 심하게 '상남자'라고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에서 '가오'라는 것을 제외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뇌가 '가오'를 지배하는 특이한 두뇌 구조를 가졌다.
캠핑은 처음인 줄 알았는데, 녀석은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마다 아버지와 한탄강 자갈밭에서 천막 치고 돗자리 하나만 깔고 2주간 물고기를 잡으며 캠핑을 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면서 캠핑장을 훑어보며 이 정도면 캠핑이 아니고 호텔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녀석은 공병대 출신답게 망치질 하나는 기똥찼다. 캠핑을 그동안 열심히 다닌 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팩을 박고 있었다.
"한탄강 자갈밭에서 망치질하던 거에 비하면 여기는 뭐 두부에 못 박는 수준이네."
녀석과 캠핑장으로 향할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그놈의 한탄강 이야기는 질리게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왜 친구와의 첫 캠핑 상대로 이 녀석을 골랐는지 나의 선택이 후회되고 한탄스러웠다.
텐트 설치와 장비 정리를 마치고 녀석은 망치질 조금 했다고 배고프다며 빨리 고기를 달라고 했다. 열심히 화로대에 숯을 넣고 불을 지피는데, 녀석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탄강으로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내가 한탄강 자갈밭에서 돗자리 깔고 캠핑할 때는 이런 최첨단 장비가 없었지. 그때 아버지께서 낚시로 물고기 잡으시면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구워 먹고는 했는데. 정말 시대가 좋아졌구나."
이 녀석과 내가 동시대를 살았던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어그릴스와 함께 캠핑을 가장한 조난을 당한 건지 아니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였던 전생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무슨 물고기를 잡아 나뭇가지에 구워 먹어.. 21세기에
숯불 위에 고기를 열심히 굽는데 녀석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열심히 고기를 굽는 나를 바라보며
"빨리 좀 구워 봐. 배고파."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고기가 어느 정도 구워졌을 때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마치 연인에게 뽀뽀해달라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야. 내가 고기 혼자 굽는 건 참겠는데, 그 닭똥집 좀 치워. 그게 사람 입술이냐 닭똥집이냐."
그 후 나는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고기를 구웠고, 닭똥집 아니 자칭 도톰하고 탐스러운 입술을 가진 녀석 또한 묵묵히 접시에 놓인 고기를 집어 먹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기를 마신 뒤, 불멍은 금지라 아쉽지만 하지 못하고 벌레에게 열심히 뜯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캠핑 재미있지? 할 만 하지?"
"응. 그러네. 근데 난 내 돈 주고 장비는 안 살 거야. 너만 열심히 따라다닐 거다."
주변에서 캠핑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나도 그랬지만 무서운 전염병처럼 처음에는 따라다니다가 나중에 캠핑 장비를 지르게 되는 것을 알기에 나는 녀석에게 "그래 몇 번 같이 다니자. 코로나 좀 풀리면 다른 애들도 함께 다니고."라고 했다.
그때 녀석은 분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싫어. 나만 데리고 다녀. 나만 고기 구워줘. 내 고기야."
역시 녀석은 캠핑이 목적이 아닌 고기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 나의 캠핑 에피소드, 지겹게도 들었던 녀석이 한탄강에서 캠핑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전기장판을 까는 것이 어떻겠냐고 녀석에게 물었을 때 녀석은 "야! 무슨 전기장판이냐. 그냥 자." 이후 또 한탄강 자갈밭에 돗자리 깔고 잤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국 우리는 발포매트 위에 얇은 이불만 깔고 얇은 여름 침낭을 덮고 누웠다. 따스했던 오후와 다르게 밤공기와 바닥은 슬슬 견딜 수 없이 춥게 느껴졌다. 녀석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녀석은 당당하게 "나의 체온 36도 너의 체온 36도 합이 72도의 열기가 있는데 뭐가 춥냐고 내게 왜 이리 나약해졌냐며 뭐라 했다. 초등학교 1학년도 상상하지 못할 이런 미친 기적의 계산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결국 나는 오들오들 떨다가 잠이 들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등 뒤에서 "으~~~~ 으~~"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잠꼬대도 참 특이하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등을 돌려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여름 침낭을 돌돌 몸에 감싼 녀석이 닭똥집 아니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추워... 추워.. 아 존나 추워.."
결국 전기장판을 주섬주섬 꺼내 깔았고, 우리는 그 후 72도의 열기를 느끼며 따뜻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텐트의 팩을 뽑을 때 녀석에게 망치를 건네며 "한탄강 스타일"로
한 번 뽑아봐라고 했지만, 녀석은 그저 묵묵히 팩을 뽑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후 녀석과 두어 번 캠핑 갔지만, 다시는 한탄강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늘도 전화해서 평일에 휴가 낼 테니 캠핑 가자고 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재미있는 추억을 남기게 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