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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l 05. 2022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 캠핑은 언제나 맑음

지난주 금요일 와이프는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면서 저도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고 와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누굴 만나 술을 마실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후보는 반찬, 상추 등은 고기 맛 떨어진다고 먹지 않고 오직 삼겹살만 5인분 정도를 한 번에 입에 쉬지 않고 집어넣는 심하게 편식하는 녀석, 두 번째 후보는 금요일에 술을 마시면 끝장을 봐야 하는 술자리의 끝판왕 같은 녀석, 세 번째 후보는 제주도 돌 하르방과 술을 마시는 건지 사람과 마시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술자리에서 묵언 수행하는 녀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이...(재이에 대한 설명은 뒤에 있습니다.)


결정을 하기 전 집 근처 캠핑장에 연락을 했더니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황금의 불타는 금요일에 자리가 있는 기적같은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다시 한번 물었더니 관리자님께서는 약간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자리는 있는데 예약하실 건가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당연히 재이와의 만남을 위해 캠핑장을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비 온다는 예보와 다르게 햇볕이 쨍쨍합니다. 지금 이 날씨에 캠핑장에서 텐트를 친다면 주인공의 주먹에 스치지도 않았지만 공중 3회전을 하며 실신하는 영화 속 엑스트라 악당 3처럼 될 거 같기에 해가 질 무렵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캠핑장을 예약하기 전 와이프에게 "나 오늘 캠핑 갔다 와도 되나?"라고 물었을 때 와이프는 짧고 굵게 "가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슬슬 캠핑 장비를 꺼내 준비했습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지만 이 날씨에 캠핑 풀세트를 외치고 실행으로 옮긴다면 전자레인지에서 돌다 속 터진 비비고 교자만두처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보다 더 미니멀로 준비했습니다. 


준비한 건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 구이바다 그리고 랜턴, 얼음도 넣지 않았는데, 왜 들고 갔을까 생각이 드는 스탠리 워터저그 였습니다. 아! 그리고 저의 소중한 친구 재이를 챙겼죠. 재이는 재너두 2P 텐트인데, 줄여서 저는 재이라고 부릅니다. 


재이... 학창 시절 조심스럽게 손편지를 주고받던 아련한 첫사랑의 이름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첫사랑이 지금 와이프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몇 번의 솔로 캠핑, 그리고 눈치 없이 굴다 와이프에게 혼나 주차장으로 유배 갔을 때 다정한 벗이 되어주던 재이를 운전석 옆 자리에 가지런히 놓고 안전벹트도 묶어준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혼자 캠핑 간다고 먹을 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거 같아 "삼겹살 조금과 술이나 사야겠다." 하는 마음에 마트에 들렀습니다. 마트에는 장을 보러 온 가족들, 그리고 어디 놀러 가는 듯한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정육 코너로 가는데 오늘은 삼겹살이 아닌 뭔가 색다른 것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충동적으로 불고기를 샀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주나 한 병 사고 나가자 마음먹었는데, 포장지를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묵사발이 눈에 띕니다.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묵사발과 불고기의 조합은 뭔가 괜찮아 보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계산대로 향하는데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분들이 오늘 회에 한 잔 어때? 이러며 남편이 회를 들고 옵니다. 순간 제 시선은 남편 아니 그가 들고 있는 회로 눈이 갑니다. 그와 흥정이라는 것을 갑자기 하고 싶어 집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제가 이 불고기의 절반 아니 2/3을 드릴 테니까 회 절반만 저 주시면 안 될까요? 전문용어로 물물교환.." 


물론 마음속으로 생각한 말입니다. 회도 먹고 싶고 불고기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래 오늘은 내 오장육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자!" 하는 마음으로 회도 집었습니다. 고맙게도 할인도 해주네요.


그렇게 저는 불고기, 광어회, 묵사발, 단무지와 물 한 병을 사들고 캠핑장으로 향했습니다. 


간장 양념에 달콤한 배즙으로 촉촉하게 샤워를 마친 고향이 호주인 불고기와 먹기 좋게 두툼하게 썰린 우윳빛깔의 광어회는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입니다. 아니 줄줄 흐릅니다. 


캠핑장에 도착해 재이를 먼저 펼치고,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고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최소한의 준비만 했을 뿐인데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이미 제 몸의 상태는 찜솥에서 오랜 시간 돌려 옆구리가 터져버린 고자 만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먹을 음식 생각을 하면 이 정도 땀을 쏟은 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고자 만두 상태가 된 것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혼자만의 만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불고기를 먼저 살짝 구우려 하는데, 아뿔싸 구이바다 위에 올려놓고 조리할 전골팬을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고기를 먹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있습니다. 다이소에서 예전에 사놓고 계속 재활용하며 사용했던 알루미늄 용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캠퍼분들 사진을 보면 음식 사진을 보기만 해도 맛있게 촬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하는 음식 사진은 보기만 해도 누가 먹다 남은 음식 같습니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하면 재능이겠지요. 불고기가 익는 동안 이번에는 광어회의 비닐 옷을 벗기기 시작합니다. 한 겹 한 겹 비닐을 벗길 때마다 제 손이 사르르 떨리는 것을 느낍니다. 

구이바다 위에서 익어가는 불고기와 광어회를 보니 "내가 이걸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라는 속담처럼 일단 열심히 먹기로 했습니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불고기와 탱탱한 광어를 번갈아 먹으며 행복감을 느낍니다. 소주는 이미 관우가 화웅을 베고 마셨던 따뜻한 술처럼 따뜻해졌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합니다. 

뭔가 시원한 게 마시고 싶어 묵사발도 바로 준비했는데, 묵사발도 화웅을 베고 온 관우가 먹은 따뜻한 술처럼 온기가 느껴집니다. 아마 관운장 어르신도 따뜻한 술과 함께 안주로 따뜻한 묵사발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캠핑장을 온 캠퍼들도 저처럼 준비한 음식을 재미있게 먹습니다. 하지만 이 캠핑장에서 오늘 가장 조용한 사람은 저 이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도 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캠핑을 다니며 텐트를 치는 순간도, 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시간도, 와이프와 차 한 잔 마시며 여유 있게 밤하늘 별을 보며 이야기를 할 때도 행복했지만,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건 캠핑을 다니며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흡혈귀의 더러운 하수충인 모기떼는 집요하게 괴롭히며 제 행복을 깨려 합니다. 이미 몇 군데 이 놈들에게 흡혈을 당했고, 저는 화타가 바둑을 두는 관우의 살을 가르고 뼈의 독을 긁어냈다는 말도 안 되는 치료법으로 모기의 더러운 독을 제거하려는 시도하려다 그건 말도 되지 않는 것 같아 물린 곳을 벅벅 긁으며 모기에게 저주를 내뱉었습니다. 


'내가 이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을까?' 했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먹어야 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 하는 마음으로 끝을 봤습니다. 저는 이제 때깔도 고운 귀신 아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제 30분 뒤 매너 타임이 시작될 예정이고, 저의 캠핑 벗 재이에게 돌아갈 시간입니다. 술에 취한 것은 아니지만, 술에 취한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 흔들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찜솥에 들어가는 만두의 심정으로 솥뚜껑 아니 지퍼를 열고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8시 저는 완벽한 고자 만두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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