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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Sep 16. 2022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기념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퇴사한 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회사에서 잘린 지 6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말 그대로 잘린 건 두 번째인데, 첫 번째 회사에서는 임원들의 횡령, 배임 등의 문제점을 내부 고발 한 뒤 남은 임원들이 나와 더 이상 "무서워서 같이 일을 못하겠다."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고, 이번 회사에는 매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내가 지며 해고를 당했다.


사실 매출에 대한 책임은 허울이었고, 회사 방향성에 대한 대표와의 갈등과 직원을 사무실의 복사기처럼 소모품 대하듯 대하는 그의 태도와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 의견을 피력했는데 그 후 대표는 사소한 문제부터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대표와 갈등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름 큰 기업의 계열사 임원으로 나를 스카우트해줬고 연봉 또한 내 예상보다 많이 책정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대표와 빨리 회사를 키워보자는 하나의 목표로 의기투합했지만, 업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을 무시하며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내가 그동안 알지 못하던 그의 천성인지 모를 태도와 함께 처음 투자를 받았을 때 나와 합의한 회사의 방향성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익만 추구하는 경영을 하기 시작하며 나와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본사에 나에 대한 험담과 자신의 무능함을 오히려 나의 무능함으로 포장하여 수시로 보고했고, 회사에서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임원으로서 직원들을 챙겨야 한다 라는 생각만 하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사내 정치'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나는 결국 그의 뜻대로 해고되었다.


생각해보니 그와 갈등을 겪던 2개월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은 처절하게 망가졌다. 매일 같이 두통에 시달렸고,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불안이라는 감정은 나를 모든 것을 지배했다.


결국 망설이다 어렵게 찾은 정신과에서 우울증 초기 진단을 받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와 벌이던 팽팽한 줄다리기의 줄을 나 스스로 내려놓았다.


처음 퇴사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집에서 잠만 잤다. 회사 다닐 때는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 잠을 많이 잔 것은 아마 신생아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사실 잠을 자지 않고 제정신인 상태로 있으면 '화'라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화'를 누르기 위해 잠만 잤던 것 같다.


그렇게 잠만 잔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이렇게 잠만 자며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이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한동안 미치듯이 해보기로 결심했다. 와이프는 고맙게도 그런 나를 이해해줬고,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보라고 나를 응원해줬다.


혼자 열심히 캠핑을 다니기도 했고, 몇 몇 산의 정상에 올라서는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눈치 보지 않고 있는 힘껏 "야호!" 를 외치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작가의 꿈을 위해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기도 했다. 뭐 그런다고 내가 작가가 될리는 없겠지만 하하.  


아침에 아이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와이프를 도와 가끔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설거지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도 당해봤다. 흑흑..)


와이프는 열심히 회사를 구하지 않는 내게 '괜찮다. 내가 널 못 먹여 살리겠냐!"라고 하지만, 와이프에게 고마운 감정과 함께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퇴사하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여러 변화와 생각이 바뀌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그동안의 인간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됐다는 것이다. 그들의 판단으로 내가 '잘 나갔을 때'와 '잘 나가지 못할 때' 대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정리되었고, 오히려 이런 힘든 시기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요리에 대한 실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을 실험대상 삼아 이것저것 요리를 해보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아들이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어라 내가 요리에 소질이 아주 조금은 있었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겠다며 와이프와 약속한 6개월의 시간도 끝나가고 있다. 이제 나도 다시 가장의 자리로 돌아가 호랑이 같은 와이프와 토끼 같은 아들을 위해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지.


마음속에 계속 자리 잡고 있던 ' 화'를 "내가 잘 지내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라며 다스리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이나 걸렸다.


앞으로 더 잘 지내자.


* 나를 쫓아낸 그 회사 지금 아주 못 나간다. 쌤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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