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 직원들은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골프, 낚시, 등산 같은 일반적인 야외 활동을 즐기는 분도 있고, 아이돌 사생팬으로 왕성한 활동이 자신의 취미라고 하시는 분도, 전혀 몸짱이 아닌데 몸짱이라 우기며 몸만들기가 취미라고 하는 분도 있고 물론 고품격 럭셔리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들이 즐기는 우아한 취미라 불리는 캠핑을 즐기는 저도 있습니다.
그중 숙면이 취미이신 저희 본부장님께서 어제 오후 갑자기 저를 부르시더니 "내가 와이프와 둘이 캠핑을 시작하려 하는데, 캠핑장 예약은 어떻게 하지?"라고 물으셨습니다. 뭔가 순서가 맞지 않는 거 같아 "본부장님 그런데 캠핑 장비는 준비하신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와이프한테 갑자기 캠핑 바람이 불어 당 X마켓에 캠핑 그만두는 사람하나 찾아서 그 사람한테 모조리 사 버렸어.."라 하십니다.
캠핑을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어깨를 조금 으쓱하며 캠핑 어플과 네이버 검색 등을 활용해 캠핑장 예약을 하는 방법을 알려드렸고, 몇 시간 뒤 본부장님께서는 "더럽게 자리 없네..." 라며 1차 분노를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핸드폰을 계속 보며 다시 한번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캠핑을 많이 다니는 거야. 더럽게 자리 없네.." 라며 2차 극대노를 시전 하셨습니다.
아마도 사모님께 '내가 캠핑장은 예약할게.'라고 당당히 말씀하셨지만, 예약을 하시지 못하니 불안-분노, 그리고 최종 단계인 초조함까지 보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캠핑을 먼저 한 선배로서 그리고 남은 2023년 무탈한 회사 생활을 위해 선심을 베풀기로 했습니다.
"제가 예약한 자리가 있는데, 본부장님께서 대신 다녀오시겠어요?"
순간 본부장님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나한테 양보해도 괜찮겠어? 아이가 캠핑 좋아한다면서."
"괜찮습니다. 아이와는 가볍게 하루 캠크닉 다녀오면 될 거 같아요."
"인원 보니까 4명까지 괜찮은 거 같은데, 우리 부부만 가는 거니까. 성성씨, 그리고 아들도 같이 가도 될 거 같은데?" (본부장님 말투는 둘이 가서 뭐 해. 심심하게. 제발 같이 가서 나랑 놀아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싫어요."
"왜? 성성씨는 아이하고 잠 잘 것만 준비해서 와. 음식은 내가 준비할게. 캠핑장 예약비도 안 받으면서..."
"이번 주말에 애가 아플 거 같아요. 애가 안 아프면 저라도 아플 거 같아요."
본부장님은 어색한 자리가 싫어 누구라도 데려가려는 물귀신 정신으로 저와 아들을 데리고 가려하셨지만, 저는 물귀신을 잡는 해병대의 마음으로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본부장님 텐트나 기본적인 장비 말고 전기장판, 난로 같은 난방기구는 있으세요?"
"아니 없어. 1박 2일 어른 둘이 밥 먹고 잠만 자다 오는 건데 굳이 난로까지 필요할까? 10월인데 설마 얼어 죽겠어. 껄껄껄.."
이 분이 올 겨울 포근하고 따뜻한 모직 코트 대신 단단한 오동나무 코트를 부부가 사이좋게 커플룩으로 입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왜 10월에도 난로 등의 난방용품이 필요한지 친절히 설명해 드렸고, 구입하시기 힘들다면 전기장판이나 팬히터 또는 난로를 꼭 대여해서라도 가져가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났을 때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각해 보니 우리가 화로대는 있거든 밖에서 불을 피운 뒤 숯을 만들어서 텐트 안에 넣고 자면 따뜻하지 않을까? 예전 우리 조상님들도 방에 화로를 방에 두고 했었잖아."
평소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시는 본부장님, 이제 지인들에게 최후의 만찬으로 얼큰한 육개장을 간절히 대접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화로대를 텐트 안에 치고 잠이 들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해 드렸습니다. 최후의 경고로 이번주 일요일 아침 뉴스에 나오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 외 이것저것 캠핑에 대한 기본 상식, 매너 등을 설명드리긴 했는데, 우리 본부장님 첫 캠핑 무사히 마치실지 살짝 걱정됩니다.
P.S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있는 전기난로 (최소 1000 와트 이상으로 보임)를 물티슈로 닦고 계시는데 불안합니다. 말려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