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by 이현주

1990년


10년의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장남의 가족은 다시 서울로 갔다. 쭉쭉이는 장남 가족이 떠나고 얼마 안 지나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일순 씨는 혼자서 키울 자신이 없어했다. 마당을 헤집고 다니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난 혼자 남겨질까 봐 걱정했는데 일순 씨가 여기에 남아 함께 했다.

그 후로 방학과 명절이면 찾아오는 자식과 손주들을 기다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일순 씨는 자식들이 떠나고 나서 더욱 부지런해졌다. 하루 종일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메고 일을 했다. 건강만큼은 타고났던 그녀였지만 무릎만은 성하질 못했다. 자식들이 한 번씩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면 텃밭과 집 곳곳에서 자라고 있던 채소들을 뽑아 차 트렁크에 수북이 쌓이게 넣어줬다. 그들은 늘 시간에 쫓기어 바빴고 일순 씨는 이해하기 바빴다. 난 잠시라도 더 붙잡아 두려고 고향집의 포근함을 내세워가며 애써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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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서둘러 인사를 하고 멀어져 갈 때면 일순 씨는 대문간 옆 주춧돌에 철퍼덕 앉아서 골목 모퉁이로 자동차 꽁지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바라봤다. 나도 그런 일순 씨를 따라 꼭대기에서 비탈 아래의 집들과 마을회관을 지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멀어져 가는 그들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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