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과학, 우리 풀 이야기
예전에 동남아시아에서 유학 온 대학원생들과 탐사를 나갔다가 붉게 익은 오미자를 만난 적 있어요.
저 빨간 열매를 우리나라에서는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오미자라고 부르는데, 그 다섯 가지 맛이 뭔지 맞춰볼래? 하고 권했다가 예쁘고 맛있게 생겨서는 쓰고 떫은데 신맛도 올라오고 너무 이상한 열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기억이 나네요.
오미자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북부 등에 분포하고 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오미자는 동남아에서는 본 적 없는 기이한 열매였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미자 이외에도 남오미자와 흑오미자 이렇게 총 세 가지 종류의 오미자가 있어요. 남오미자는 전라남도와 제주도에만 자생하며 겨울에도 잎이 푸른 특징이 있고, 흑오미자는 제주도에 자생하는데 열매가 붉은색이 아닌 검붉은색이라고 합니다. 사실 오미자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열매라 귀하다는 생각은 못했었는데요, 오미자와 흑오미자는 국외반출 승인대상으로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전가치가 높은 생물자원이더라고요.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붉게 익는 오미자 열매는 한방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약재인데요, 중국에서는 중국의학에 꼭 필요한 생약 50가지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귀한 약재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오미자는 동의보감 내경편에 폐에 좋은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조대왕이 즐겨 마셨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한방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오미자가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눈을 밝게 하며 신장을 덥혀 양기를 돋워주며, 남자가 먹으면 정력에 좋고 소갈증을 멈추며 기침이 나는 것과 숨이 찬 것을 치료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해요. 오미자는 진상품이었으며 임금님을 위한 약으로도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조선 9대 임금인 성종, 11대 임금 중종, 14대 임금 선조의 약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21대 임금으로 무려 52년간 왕위를 지키면서 82세까지 장수하셨던 영조대왕은 오미자차를 즐겨마셨다 하고 하는데요, 실록에 따르면 영조 12년에 술을 끊으셔야 한다고 아뢰니 영조께서 목이 마를 때 간혹 오미자차를 마시는 모습을 소주인 줄 오해하는 것일 뿐이라 답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예로부터 한약으로 사용되던 오미자는 현재까지도 한국, 일본 및 중국의 약전에서 의약품으로 사용 가능한 약용식물로 다루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이어 최근까지도 건강관리에 사용되는 소중한 천연물입니다. 저도 생약규격집에 수재된 생약 연구를 할 때에는 오미자의 지표물질인 Schizandrin 분석을 꽤나 많이 진행했었지요.
오미자의 주요 효능은 크게 7가지로 알려져 있어요(출처: 한국전통지식포탈)
1. 생진(生津)
진액을 자양하는 약물을 사용하여 고열 등의 원인으로 인한 진액 손상을 치료하는 방법.
2. 안신(安神)
담기허(膽氣虛) 또는 담열(膽熱)로 인하여 발생되는 양기조동(陽氣躁動), 심계(心悸), 실면(失眠), 경간(驚癇), 광망(狂妄), 번조이노(煩躁易怒) 등의 병증이 있을 때, 정신을 안정시키는 방법.
3. 수한(收汗)
땀을 멎게 하는 효능.
4. 염폐자신(斂肺滋腎)
염폐(斂肺)하고 신(腎)의 기능을 자음하는 효능.
5. 지갈(止渴)
갈증을 그치게하는 효능.
6. 지구(止嘔)
구역(嘔逆)을 멈추게 하는 효능.
7. 해주독(解酒毒)
술을 과하게 마셔 그 후유증으로 생긴 독(毒)을 풀어주는 효능.
최근에 과학적인 연구에서도 오미자의 효능과 그 메커니즘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만성 무기력증 개선(동물실험), 다당류의 진해효과(동물실험), 면역조절 효과(세포실험), 비알코올성 지방간 보호 효과(동물실험) 등의 효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생약연구과 한약재 품질표준화 연구사업단 보고서).
전통 문헌이나 과학적 실험 결과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사실 한국인이면 최소 한 두 번쯤은 오미자를 먹으면서 효과를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매실청과 오미자청이 각 가정의 비상 상비약처럼 여겨질 정도로 유행을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푸른 매실을 따서 씨를 제거하고 설탕에 켜켜이 재워두고, 초가을에는 붉은 오미자를 깨끗하게 씻은 후 설탕에 켜켜이 절어 청을 만들어두고 깨끗한 천으로 걸러 진한 농축액으로 만든 후 일 년 내내 두고두고 요긴하게 사용하곤 했지요.
저희 집에서는 매실청과 오미자청은 꼭 냉장고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할 땐 매실청을 따듯한 물에 타서 마시고, 땀이 많이 나고 기력이 없을 때에는 오미자청을 차가운 물에 타서 마시고, 겨울에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끊임없는 길고 긴 밤에는 도라지청과 오미자청을 섞어 따뜻한 물에 타 먹곤 했습니다. 음료수보다 매실청과 오미자청이 익숙하고 생수보다는 버섯물이 친근하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에 처음 기숙사에 들어가며 부모님과 헤어져서 지내게 되었을 때에는 이제 그런 이상한 물 대신 맛있는 음료수와 생수를 실컷 마실 수 있다고 좋아했었는데요, 훗날 자취를 하면서 슬그머니 매실청과 오미자청을 싸와서 냉장고에 쟁여두곤 했습니다. 매실청도 두루두루 요긴했지만, 특히 오미자청은 맑갛고 붉은색도 예쁘면서 새콤하고 달달하면서도 묘하게 남는 아릿한 쓴맛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매력이 있어 생수, 탄산수를 거쳐 소주까지 타 먹으며 무한 응용력을 발휘하게 했었지요.
오랫동안 오미자청을 드신 아버지는 오미자를 먹고 나서 추위를 덜 타게 되셨다고 확신하고 계신데요, 저는 경험적으로 겨울밤에는 오미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유난히 약한 기관지와 비염으로 고생하던 수많은 밤에 따뜻한 오미자차 한 잔이 큰 위로와 치료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맛이나 색으로만 보면 오미자청만 타서 먹는 것이 좋지만 겨울철 기관지로 힘들 때에는 생강차, 도라지차, 어성초차 등을 진하게 우린 후 오미자청을 넣어 먹은 적도 많아요. 아직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슬쩍 쌀쌀함이 느껴지는 계절. 올 겨울은 무난히 지나가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면서 오미자를 쟁여둬야 하나 싶은 걱정이 슬슬 시작됩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산지에 가서 오미자를 사 오는 수고를 줄이고 인터넷으로 쉽게 구입하거나 아예 오미자청이나 음료를 구입할 수 있으나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우리 민족끼리 오랫동안 즐겨먹으며 함께했던 오미자는 올해 처음으로 음료로 개발되어 인도네시아에 수출한다고 하네요. 빨간 떡볶이에 이어 붉은 오미자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며 K-농업, K-음료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소중한 약재가 된 오미자는 세대를 거듭하며 다양한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음식을 나누면 추억이 쌓이고 추억이 쌓여 인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올 가을에는 직접 오미자청을 만들어보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 경험과 함께 오미자에 대한 추억을 쌓아가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