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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긍정 Oct 19. 2020

INTJ가 겪은 10일간의 코로나 자가격리 후기

일상 이야기

작은 기침과 약간의 몸살 기운에도 예민해지는 시기입니다.

저는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달라진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끝내고 15일이 지나서야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네요.


 코로나 검사를 받기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된 것은 제가 코로나 양성 확진자와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되기 10일 전 잠시 37.7도로 열이 오른 날이 있었어요. 갑작스러운 발열에 당황해서 1339에 전화하고, 보건소, 국민안심병원 등을 통해 문의하고 일단은 증상이 없고 열도 높지 않으니 가까운 병원을 가보라는 안내를 받았고, 그렇게 조퇴 후 찾아간 병원에서는 비염 증상일 뿐 코로나는 아닌 것 같으니 안심하라며 비염약을 처방해주셔서 먹고 있었습니다.

화요일 아침 출근 중에 직장에 확진자가 발생했고, 저도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우선 출근은 하지 않은 상태로 1339에 문의하고 집 근처 보건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었으니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기 전에는 자비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더라고요. 저는 가까운 보건소의 코로나 검사소로 갔었고,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와 2일 전 식사를 함께 했었는데, 식사를 했던 날부터 어제 낮까지 해열제가 포함된 비염약을 먹었고 어젯밤에 37.2도의 체온을 확인했었다는 설명을 드린 후 조사양식을 작성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덤덤했던 시간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리고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혹시 자가격리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정리하고 남편에게 검사를 받고 왔으니 오늘은 집에 들어오더라도 일단 각방을 쓰자고 얘기를 해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오후까지 아무 생각이 없긴 했어요. 딱히 아프지도 않았고, 오늘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면서 직장 동료들과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연락을 주고받느라 바빴거든요. 코로나 검사를 받기는 했지만 아무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오후까지도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두려워지기 시작한 밤

그런데, 코로나 검사 후 결과를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르더라고요. 저녁 8시쯤 다른 지역에 거주 중인 직원이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을 해주었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저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집에 살고 사이도 좋지만 갑작스럽게 남편과 각방을 쓰면서 잠은 오지 않고 생각만 많아지고 확진자와 식사 후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마침 지난 토요일이 시아버님 생신이라 가족들과 함께 형님 댁에서 식사를 같이 했기 때문에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혹시 나 때문에?

혹시 나 때문에 누군가가 감염이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금요일부터의 행적을 돌이켜 꼼꼼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금요일은 식사 전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1인 1 접시로 나오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식사 중에 딱히 비말이 옮길 일은 없었을 거야. 그래 괜찮을 거야. 금요일에 내가 확진자 분과 뭘 같이 했지? 그때 난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가? 금토일 나는 언제 마스크를 쓰고 언제 벗었지? 손은 잘 씻었던가? 이렇게 끊임없이 금토일의 제 행동에 대해 곱씹어봤습니다. 덕분에 보건소에서 확진자 분과 식사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하셨을 때 테이블 위치, 테이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특징까지 모두 말할 수 있기도 했지요.


지난 3일을 되돌아보다

지난 금토일의 나, 마스크 그리고 손 씻기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가 그래도 혹시?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어요. 토요일에 어머님이 요즘 시국이 이러니 차에서도 마스크를 쓰자라고 하셨을 때 사실 조금 유난 아닌가 했었는데, 그런 제안을 해주신 어머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에서도 식사 전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던 저에게 답답하지 않아? 하면서도 유난 떨지 말고 마스크 벗으라고는 하지 않으셨던 식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그렇지만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시간들이 후회되기 시작했고, 추석을 앞두고 에이 요즘 시국에 추석에 만나서 조상님 기리려다가 단체로 조상님 만나러 직접 갈 수도 있어요! 하고 웃었던 제 자신이 미워지기도 했어요. 그런 말을 해놓고 정작 나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모두 아프면 난 진짜 어떻게 하지? 하는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우리 회사야 회사 내에서 확진자가 나온 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 때문에 남편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그래서 남편의 회사 식구들도 코로나에 걸리게 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과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계신 형님은 괜찮으신지 괜히 나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시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몰려왔고요. 자주 만나지 못해 많이 귀여워해 주지도 못한 조카가 나 때문에 아프게 된다면 날 얼마나 원망할까? 이래 봬도 건강만은 아직도 자신 있으시다던 시아버님도 괜히 나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시게 되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런 공포감이 끊임없이 몰려왔습니다.

억울함보다 큰 공포,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아프다면?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고,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생활을 한 것뿐인데!! 조심한다고 했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식사를 했을 뿐인데!! 하는 억울함도 잠깐 들었지만 그보다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누군가가 아프다면? 나 때문에 누군가가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면? 누군가가 나 때문에 아픈데 그게 내 가족이라면? 이런 생각에 잠을 설칠 만큼 무섭고 두려웠어요. 직원들과 얘기했을 때에도 다들 혹시 나 때문에 가족들이 아프게 될까 봐 정말 많이 걱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짧지만 큰 공포, 코로나 검사 결과를 알게 되기 직전

다음 날 아침 회사 사람들이 하나 둘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을 주기 시작했음에도 저는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의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길고 무섭고 답답하게 느껴졌는지요. 혹시 나만 양성이라 연락이 늦게 오는 걸까? 다른 친구도 예전에 아침 8시 전에 연락을 받았다는데 나는 왜 9시까지 연락이 오지 않지? 혹시 나만 양성이면 어떡하지? 확진자와 내가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확진자였고 나와 식사한 분이 더 먼저 증상이 발현된 것이라면 어쩌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몰려와서 마치 내가 대역죄인이고 대형 병원균 덩어리가 된 느낌에 머리가 무겁고 올바른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9시 10분쯤 더 기다리다가는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라 보건소에 연락을 해보았어요. 저희 지역구는 10시 이전에 취합해서 연락을 주신다더라고요.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지. 내가 양성이라는 뜻은 아닐 거야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정말 심장이 다 녹아내릴 뻔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불안하고 무섭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9시 30분쯤,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결과를 알게 된 사람이었고, 다행히 다른 직원들은 모두 음성으로 판정되어서 아주 많이 심각하진 않은 상태로 자가격리를 시작했습니다.


자가격리 시작

자가 격리자가 되면, 식구들과 방을 따로 써야 하고 화장실이 딸린 방에서 홀로 생활할 것을 권유받아요. 둘이 사는 집에 방 3개 화장실 하나면 호화롭지.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야 하고 늘 즐거웠는데, 자가 격리자가 되고 나서는 화장실이 1개뿐인 집에 사는 것이 평생 처음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부자가 되어서 꼭 1인 1 화장실을 갖춘 집에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다지게 되었고요. 저처럼 화장실 1개를 온 식구가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화장실 사용 후 소독제(에탄올)를 뿌리고, 화장실 사용을 시간 차이를 좀 두고 쓰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굉장히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탄올을 뿌린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어버리면 왜 코로나가 유행을 하겠어? 사방팔방에 에탄올 팡팡 뿌리고 야호! 하고 말면 그만이지? 이런 생각이 몰려와서 무서웠습니다(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소독용 에탄올은 바이러스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활성을 낮추기는 한다더라고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남편의 회사에서 제가 자가 격리자가 된 사실을 알고 기숙사로 사용하던 빌라를 내주어서 남편은 회사의 기숙사에서 홀로 지내고, 저는 집에서 홀로 자가격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달라진 일상

음성 판정을 받은 감사함, 나로 인해 내 주변이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감사함, 불편하지 않도록 남편이 따로 지낼 곳이 생겼다는 감사함은 정말 짧게 스쳐 지나가버렸습니다. MBTI에서 INTJ로 나오는 저는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고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자가격리와 재택근무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던 제 일상이 완전히 와르르 무너져버리게 되자 공포가 몰려왔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평소에는 출퇴근의 힘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침에 출근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조금 일찍 출근해서 지하철에서 오늘 출근 전 짜릿한 짧은 일상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습니다(대부분 서브웨이 아니면 카페 방문하기 입니다만 그 짧은 짜릿함이 있어요). 그런데 준비되지 않고 갑자기 시행하게 된 재택근무는 근무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힘겹게 찾아냈던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도 없어 몹시 당황스러웠어요.

구석에서 찾아낸 즐거움

일단, 아침에 출근하면서 즐기던 모닝커피는 집에서 내려마시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예전에 사서 먹다 남은 원두가 집에 있더라고요. 자가격리 첫날 팬트리 구석에서 찾아낸 원두는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 원두 산화된 것 아닌가? 봄에 산 원두를 어떻게 가을에 먹냐 하고 툴툴거렸을 텐데 지구 상에 이제 나에게 주어진 원두는 오직 이것뿐이다! 이런 생각에 그 오래된 원두는 제 평생 가장 고소하고 진한 완벽한 커피로 재탄생했습니다. 집 한편에는 예전에 수술하고 집에서 운동하기 위해 구입한 워킹머신이 있었는데요, 당근마켓에 판다 만다 하면서도 귀찮아서 그냥 처박아두었던 고물딱지는 세상 둘도 없는 보물로 다시 태어났어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걷는 것 대신 워킹머신을 이용해 30~40분 걸으면서 활력을 찾았습니다. 집도 좁은데 이런 거 왜 사냐, 이런 걸 사는 사람이 누군가 했는데 요기 있네! 와 이런 게 우리 집에 왜 있어요? 하면서 갖은 놀림을 다 당했던 제 워킹머신은 훌륭한 자가격리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재택근무와 소소한 행복

재택근무 중 발생하는 근로의 힘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찾은 소소한 행복은 점심 빨리 먹고 침대에 잠깐 누워있기입니다. 최대한 빨리 먹고 20~30분 정도 낮에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힘겨운 자가격리&재택근무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가끔 회사에서 너무 눕고 싶을 때를 위해 침대에 누워 천장을 찍은 사진을 하나 저장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삶이 힘겨울 때 꺼내보곤 했었는데요, 재택근무 중에는 점심시간이라도 잠깐 내 침대에 잠깐 누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퇴근과 동시에 가정으로 출근

하지만 자가격리+재택근무는 퇴근 후가 아주 무시무시했어요. 평소에는 퇴근이라는 것 자체가 기쁘기도 하고, 중간에 남편을 만나서 집으로 가는 과정이 매일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기도 해서 퇴근 후에는 항상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자가격리+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퇴근을 하면 바로 집안일을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둘이 비교적 완벽하게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명이 사라지니 일거리가 태산같이 쌓이더군요. 식사 준비, 설거지, 청소, 정리, 반려견 돌보기 등등 일도 많고 게다가 집에 오래 있게 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 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지, 정리되지 않은 전선, 쓸모없는 물건들.. 퇴근하고 집안일하기도 바쁜데 자가격리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퍼지자 안부를 묻는 전화들까지 몰려와서 한 3일 정도는 공허함을 느낀 틈도 없었습니다.


다시 찾은 안정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출근할 때까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적응하자 새로운 재미도 느끼게 되었고, 자가격리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는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고민과 재미를 함께 나누던 동반자가 옆에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가격리와 반려동물

그런데 자가격리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반려동물!! 사실 코로나와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이슈가 되지 않죠. 사람의 일상이 흔들리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고 나니 우리 집 반려동물이 가장 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도 우리 집 강아지 호야였어요. 매일 저녁에는 짧게라도 산책을 나가던 우리 집 귀여운 16살 요크셔테리어 호야는 저랑 같이 격리되면서 뜻하지 않게 자가격리견이 되었어요. 10일 동안 밤낮으로 아무리 열심히 우리가 왜 산책을 나가지 못하는지, 매일 집에 오던 형이 왜 오지 않는지 설명을 해도 호야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무려 10일이나 집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산책을 나가주지 않는 나쁜 사람. 네 그게 저였죠.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자가격리에 익숙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 있으면서 산책 한 번을 나가주지 않는 저를 향한 호야의 원망도 커졌습니다. 원래도 저와는 엄청 살가운 사이는 아니고 자주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편이긴 했는데, 10일이나 탱자탱자 집에 있으면서 산책 한 번을 나가주지 않던 제가 아무 제대로 얄미웠는지, 자가격리 해제가 1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호야는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피하고 있어요. 코로나도 자가격리도 모르는 한 마리 강아지가 상황을 크게 오해한 덕분에 저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호야는 몸의 상처를 입기도 했지요. 원래 남편과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던 호야는 자가격리 해제일에 집에 돌아온 남편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펄쩍 뛰어나가다가 앞다리를 삐끗해서 병원 치료도 받고 한동안 약을 먹었습니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집에서 함께 고생한 호야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는 새로운 소속감

10일간의 자가격리는 많은 점을 새로 알게 되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초, 중, 고등학교를 다 다른 지역에서 다녔을 정도로 자주 이사를 다녔던 저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만큼 내가 어디 사람이라는 생각 없이 지내왔었습니다. 게다가 결혼하면서 충청도를 떠나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졌어요. 그런데 이번 코로나를 통해 내가 지역사회 구성원이며, 우리 지역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많이 신경 써준다는 감사함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역 보건소에서 위생용품과 건강관리 용품을 지원받고, 시청에서 먹거리를 지원받고, 지역 보건소에서 심리상담 전화도 해주고, 시청에서 쓰레기도 수거해주신 덕분에 와 안양시 만안구가 나를 참 많이 챙겨주는구나. 나는 안양시 만안구 사람이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양에서 딱 5년 살았지만, 나는 안양 사람이지, 나는 안양이 돌봐주는 사람이라고! 안양, 여기는 정말 따뜻한 동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람을 만나지 않고 편하게 지내려면 사람이 많은 곳에 살아야 하는 아이러니

자가격리를 계기로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는 삶에 빠르게 적응하고 이와 관련된 많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용품은 온라인 마켓으로 주문하고, 먹고 싶은 것은 배달 앱으로 주문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지요. 심지어 소주, 맥주, 와인도 배달 앱을 이용하면 다 배달되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시대가 되면 오히려 지역격차가 더 심하게 발생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제가 사는 안양은 새벽 배송으로 오늘 밤 11시까지 주문한 물건은 다음 날 새벽에 받아볼 수 있고 필요한 물품은 대부분 다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배달되는 음식의 종류도 많고 주류는 물론 편의점 식품들까지 배달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비수도권에 살았다면, 새벽 배송은 안되고 마트 배송만 가능했을 것이며, 그것도 오늘 주문하면 내일 꼭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이라면 배달, 배송이 더 원활하지 않지요. 만약에 섬에 살았더라면 편리한 생활은 조금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을 만나지 않고 편리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 내가 살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지금 남들이 뭘 하고 있지?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문학이 번성하겠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이 할 일이 적어지면, 사람은 감성적인 것, 감각적인 것, 마음을 채워주는 것을 더 원하게 될 테고 그렇다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이 더 필요해지는 시대가 오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자가격리를 해보니 정말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니 사람들이 하는 일이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평소에는 출퇴근하고, 일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치여서 지내니 퇴근해서는 동물 사진이나 만화책을 더 많이 보곤 했는데,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까 지금 남들이 뭐하고 지내는지가 너무 궁금하고,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지금 사람들은 밖에서 뭐하고 지내는지 알아내고 싶었어요. 평소에는 유행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고 난 내가 궁금한 것만 본다! 이런 주의였고 사람 만나는 것을 참 싫어했는데, 집에 갇혀서 홀로 지내다 보니 남들은 지금 뭐 하고 있지? 나만 유행에 뒤쳐질 수는 없어! 나만 빼고 뭔가 좋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남들 하는 건 나도 다 하고 싶다!! 남들 하는 걸 일단 보고,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더라도 남들이 지금 뭘 하는지 나만 모른다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다들 밖에서 생활하는데 홀로 집에 갇혀있다 보니 나만 좋은 걸 모르고 지나칠 수 있겠다는 새로운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의외의 부작용, 마스크 집착

그리고 자가격리로 인한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겼어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전 직원이 음성으로 지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운이 좋아서 안 걸렸다기보다는 떨어져 지내려고 노력했고, 마스크를 썼고,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친밀하게 얘기하고 뭘 나눠먹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 다행이었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저러다 코로나 걸려서 자기 주변에 민폐 끼치고 결국엔 아파서 죽으려고!! 이런 생각이 많이 들곤 합니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주인공들이 친밀하게 다가가면 아이고 저라다 코로나 걸린다. 이런 생각이 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키스신이 나오면 아이고 저러다 코로나 걸릴 텐데 이런 생각이 들고요. 티브이에 사람들이 나와서 음식 나눠먹는 프로그램을 보면 저러다 집단감염으로 뉴스에 나온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박보검이 김소담 뺨을 쓸어내리고 뽀뽀를 하려는 애틋한 순간에도 저러다 코로나 아! 저건 드라마구나. 이런 지경이에요.


아프고 난 다음에는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이제 고작 20여 일이 지난 제 자가격리 경험은 앞으로도 길게 제 삶에 영향을 줄 것 같아요. 그리고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마스크 착용과 비누를 이용한 올바른 손 씻기를 생활화해주세요.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내가 아픈 것도 당연히 문제지만,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나를 만나 나와 함께 일상을 공유했기 때문에 아프거나, 제재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공포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작은 불편함은 그 고통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돼요. 저는 증상이 전혀 없었음에도 너무 큰 공포와 불안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만일, 제가 발열과 통증이 있는 유증상자였다면 제 고통을 견뎌내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원망을 받아내야 했겠지요.

아프고 난 다음에는 아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스크와 손 씻기로 감염을 최소화해서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이 시기를 지나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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