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빠란...
나에게 아빠,아버지의 존재는 돌아가신 지 만 25년이 지나가도 거대한 산이다.
어쩌면 조금은 남들보다 특별히 유난스러울 지도 모르는 아빠와의 추억들이 ..
매년 아빠의 기일 전으로 가슴 앓이를 하곤 한다.
올 해는 막내의 입대, 발의 불편함 을 무릎쓰고 감행한 해남으로의 쇼셜여행등등 으로 그냥 조금만 아프고 지나나 했는데,
거꾸로 기일을 지내고 연휴가 끝나가는 어제 오늘 ..
기침에 콧물을 동반하더니 급기야 멍해지고 마는...
아빠는 나에겐 아마두 나를 사랑해주시는 주님 다음으로 ,아니 양 대 산맥처럼 나를 지탱하게 해주시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다니며 경험 한 모든 것들이 내 마음과 머리 속 어디선가 깊은 뿌리로 내려졌기에, 살아 오는 내내 여러 곳에서의 생활 적응이 자연스럽게 날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짐정리를 하다 가( 1970년 대 ,내가 국민학교 시절의 매달 우리 집으로 배달 되던 일본의 발간되는 우표들을 아빠가 돌아가시곤 ,남동생이 아닌 나에게 엄마가 주셔서 보관하던 것들)아빠의 유품을 꺼내보게 됬다.
당시 아빠의 일본 친구분께서 아빠에게 보내주시던 귀한 선물...
내 기억에도 매 달 신기하게 구경하며 기다려지던 일본 우체국에서 발행됬던 우표들...
내 아버진 그런 분이셨다.
배려가 가득하셔서 그 어디서든 좋은 깊은 인연을 이어가시던 ...
어느 날이던가 도착하던 우표가 기다리는 내내 오질않아서 아빠께 여쭤봤던 기억...
그 지인분이 돌아가셨다던 아빠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결혼하고 나서 ,장인과 사위는 모든 분들이 조금씩 다퉈가며 바둑을 두는 줄 알았다. 왜냐고물으면 어릴 적 우리집에선 항상 외할아버지와 아빠가 한 수 씩 물리자시며 아옹다옹 다투시면서도 정신없이 몰두 하시던 두 분의 바둑두는 모습이 강하게 내 머리 속 어딘가에 선명히 저장되어 있었기에 말이다.
내 결혼생활중의 꿈 하나 이기도 했던, 그렇지만 그런 모습을 나의 옆지기와 아빠에게서 발견할 틈도 없이 아빠는 훌쩍 가버리셨던...
어려서 단촐하고 조용했던 네식구의 우리집
맏딸인 난 항상 활발한 척을 한 적도 많다
집안이 조용하면 왠지 불안해서 내가 먼저 호들갑을 떨어댔던..
그래서인지 난 형제가 많은 집으로 시집을 갔는지도...
아직도 선명한 기억중에,
막내셨던 우리 아빠는 당신이 어머니를 모시고 싶으셨었던 마음을 날 맏며느리로 보내시며 시조부모님까지 계신것을 기뻐하시며 대리만족을 하신듯 한 마음을 나는 살아가며 깨달았다
어린시절, 명절 전이면 귀한 달력과 몇 병의 양주를 직접 포장하시며 어린아이처럼 친가에 가져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난 지금도 기억하곤 한다.
친가에 내려가면 친할머니께서도,두 큰아버님들께서도 차이 많은 아빠의 이름을 불러제끼시며 맞아주시던 풍경도 말이다.
내나이 사십 후반에 이사가게됬던 미국에서 막내이모부께서 들려주셨던 아빠의 혼인 전,미국시절의 이야기...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아빠의 젊은 시절을 막내이모부께서 들으셨던 이야기를 그 때서야 전해주셨다
대학후 미국에서 일을 하셨던 아빠는 모으신 월급으로 귀국전 이십개가 넘는 주들을 여행하셨었다는...
귀국전 난 큰아이에게 그 이야길 전했고,큰 아인 보지도 못했던 외할아버지의 여행 발자욱을 따라 할아버지가 다녀보신 그 길을 홀로 쫓아가보는 홀로의 여행을 해주었다.
참 신기한 일은 그 아이의 태몽을 제일 먼저 꾸어주신 분이 나의 아빠셨고,태어났을땐 제 아빠를 닮았던 아이가 클수록 눈썹이며 눈매는 영락없이 나의 아빠를 쏙 빼닮아 가더라는 사실이다
더 신기한 것은 나의 아빠가 양띠셨는데 그 아이 역시 양의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
나의 두 아들들은 나의 아빠와 엄마의 띠를 그대로 똑같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가끔 나에게 자극으로 돌아온다.,
아빠가 나에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하나는 삼개국어를 공부해라
또 하나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마라...
난 내 첫 신혼지였던 광양에서부터 센다이 미국 을 돌면서 그 말씀을 따르려 애썼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그 여러곳에서 씩씩하게 적응할 수 있던 원동력.
그건 나에게 아빠였으니까...
지난 연말,급하게 아빠를 이장해야해서 이십오년만의 해후의 시간에도
이십 오년전의 시간에도
아빠는 가족 중 그 누구보다도 나를 찾으셨던 기억...
지난 겨울 ,깊은 땅 속에 계시던 그 분의 모습,그리고 화장뒤의 항아리 모습 채
내 가슴에 안고 아빠와의 오랫만의 해후에 그저 감사하면서도 온통 그리움이던 시간..
그랬다
올 해도 또 이렇게 지나갔다.
아빠의 기일이
이제는 음성도 기억에서 희미하지만 ,항상 날 응원해주시던 환한 웃음의 멋장이셨던 내 아버진 여전히 내 가슴 속에 가득하다.
감사하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아빠께 되뇌어본다
우리 부녀는 아마도 조금은 특별난지도 모른다.
앞으로 긴 세월들 역시 나에게 나의 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이며 응원자이시며 내 든든한 빽이시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