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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Oct 01. 2021

외가의 추억

어린 시절의 동생들과.

내 어릴 적 ,

우리 집엔 하나뿐인 남동생의 친구들로 북적였었다.

사실 당시의 난 참 싫었었다.


늦게 혼인하신 나의 엄마와 아빠 ( 당시 30과 33세 셨단다)


엄마는 모 은행 비서실 출신이셨고 , 아빠 역시 모대학 강사와 미국으로 잠시 교수로 떠나셨다 귀국하셨던 엔지니어 출신...


우리 아빠는 큰외삼촌과 같은 직장이셨고 , 외삼촌께선 혼기 찬 여동생들 중 누군가와 맘에 드는 아빠를 연결시키시려 했었다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맺어진 엄마 아빠는 늦은 출산으로 나와 남동생을...


그러다 보니 엄마는 항상 하나뿐인 아들을 옆에 끼고 계셨었던 기억.

그 영향 때문이었을 지도 ,

아무튼 우리 집엔 사내아이들로 북적였고, 난 사춘기로 접어들기도 훨씬 전부터 밖으로 돌게 되었던 추억들이 가득하다.


국민학교 일 학년 때는 교회학교의 여름 성경학교에서 독창을 하고 일등을 하는 바람에 오 학년부터 단원인 성가대에 막내로 참여하게 됐던 추억도 , 그 덕에 겨울이면 성가 캐럴송을 도는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서 어느새 잠들어버린 나는 우리 집 순서에 집으로 돌랴 보내지기도 했었던 기억.


외국계 회사를 다니셨던 아빠는 엄마 대신 날 외국 손님들이 오실 때면 데리고 다니셨다. ( 엄마가 아들만 끼고 계셨었던 ^^)

그 덕에 당시 국민학교 삼 학년이던 내 눈에 코쟁이 아저씨들 , 필리핀의 예쁜 아줌마, 아저씨들 등  외국인과의 만남이 가득했었던 기억도...


오늘 글은 사실은 우리 집에서 북적이던 그 소년들과의 에밀리의 집밥 글을 쓰려던 것이었다.

서두를 쓰다 보니 이건 외가의 추억에 올려야 하는데 거지 싶게 서론이 길어졌고 , 주제도 바뀌어 버렸구나 싶다.


아무튼 명절 뒤 , 엄마가 부탁하고 가신 남동생과 명절 음식을 나누려다 일이 커져서 , 멋쟁이 어머님이 셨던 대구 사범대 출신의.. 어머님 댁 자제분, 사진작가인 또 다른 자제분과 집밥을 나누며 즐겁게 사진놀이까지 이어졌던 어느 날 저녁의 행복했던 시간을 이야기해본다.


.. 어머님의 암 수술 소식을 지난봄 접하곤 문병도 못 간 채 , 몇 가지 음식을 조금씩 챙겨서  보내고 나니 한결 마음도 가벼워졌다.

먼저 가신 내 엄마의 벗들이셨으니 내게 또 다른 어머니 시기도 하다.


반갑게 어제 전활 주셨다.

보낸 음식에 대한 감사와 보고싶다시는 음성에 ,

10월에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오늘이 10월 첫날이다.

이 달이 가기 전에 꼭 찾아뵈러 가야지 하며 스케줄을 살펴본다.

육전 가득
곁들인 야채사진은 빼먹고

내장 가득 전복죽과

마늘 가득 야채 가득 닭볶음탕도

잘 익은 알타리,

제철 배에 얹은..

초상권 침해라  그날의 분위기만 전달하고 싶어서...

음식 준비보다 편한 동생들과의 자리라 머리도 가다듬지 못했었지만,

얼마나 즐거웠었는지를 저의 표정으로  대신해봅니다.


어려서 북적대던 그들이 참 싫었었던 추억이 , 이제는 같이 늙어가며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벗들로, 선후배로 , 가족 같던 가을밤이었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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