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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Oct 17. 2021

외가의 추억

어린 시절에 가 있던 그곳 당진

언제였더라?

몇 해전 벚꽃 구경을 당진 근처 서산 쪽으로 다녀온 시간이 ,

아마도 코로나 이전 2018년 봄쯤이었던 듯하다.


난 SNS를 2010년 갑작스러운 미시간으로의 이사 시절부터 시작했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한 출렁다리에서의 사진 하나와 그 사진 장소의 수목원이 나에게 갑작스레 외가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려 주었다.


서둘러 검색을 해보니 당진의 아담한 수목원인 듯해서,

마침 벗과 짧은 가을 여정을 고민하던 중 여기로 가자!로 결정을 해 버렸던.


"당진" 하면 ,

먼저 내게 떠오르는 장면은 외가댁 대문을 나서면 펼쳐지던 옆 누에 공장의 넓고 커다랗고 길었던 , 누에고치가 가득 얹어져 있던 풍경이다.

그 누네 고치를 지나 내려가면 넓은 개울가가 펼쳐졌고, 다릴 건너 당시 그 동네 아이들과 큰 길가 옆 길을 살금살금 걸어서 국민학교에 도착하면 내겐 세째이모인( 당시 올드미스셨던 ) 임 선생님께서 토끼 눈으로 달려 나오셔서 ' 아니 그위 험한 길을 왜들 걸어왔니!' 하시며 호통을 치시면서도 애정 어린 눈빛이셨던 장면도 더불어 떠오르곤 한다.


언제던가 외할머니께서 해 주신 이야기 하나,

할머니 하며 뛰어들어 온 러닝과 속옷바람의  내가 할머니를 끌고 간 곳은  그 강가 변.

귓속말로 ' 할머니 내   옷이랑 양말이 없어졌어요 ' 하며 모래를 파며 찾던 나였단다.


나름 깔끔을 떨던 도시의 소녀는 그곳의 아이들이 옷을 입은 채 물장난을 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어 곱게 원피스와 양말을 강가 앞 모래 속에 숨기고 놀았던 모양이었다는 짐작은 해 본다.

그 이야기가 떠오를 때면 지금도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다섯 살짜리 내게 너무나 높았던 외가댁 대청마루,

대청마루 한편을 열면 뽀얀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있었고 , 난 그 달달함에 홀짝홀짝 거리기도 했었고,

할머니 안방에 있는 작은 다락 창고엔 언제나 온갖 맛난 것들로 가득했었던 기억(그 보물 창고 다락에 올라가 곶감, 제사 때 올리는 유과 , 사탕 등을 몰래 먹곤 하던 나),

또 자개 장 서랍엔 털실로 짠 고운 옷들도 가득했던 희미한 기억이 가득하다.


돌아가신 엄마는 소학교를 졸업하던 전 날 , 할머니 몰래 서랍 속 면천을 꺼내 친구들에게 줄 손수건을 만들어 나눠주셨었고 , 그 일 이발각 되 힐머니께 엄청나게 혼났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었다.

외할머니는 현명하고 이치가 밝은 다부진 분이셨고 , 외할아버지는 인자한 웃음이 그치지 않는 정이 가득한 따뜻한 분이셨다.

아들 , 딸 8명을 낳으셨었지만 외삼촌 한 분은 갓난아기적에 사망을 했었다고 들었고 , 셋째였던 나의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겐 상 딸이셨단다. 상딸이란 할아버지 식사 시간에 꼭 상 옆에 앉혀두시던 자식을 이야기한다고 들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아무튼 그런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내게 모두가 떠나오신 , 아무도 , 아무것도 남지 않은 , 완전히 변해버린 당진읍이 낯설어진 것 여기 오래전이지만 , 그래도 아직도 당진 이란 지명은 내게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외가의 언저리 작은 수목원에서 보며 , 걸으며, 눈에 담으며 나의 외가의 추억을 모두 소환했었던 며칠 전의 가을 동화 속으로 여러분을 감히  초대해 보는 갑작스러운 추위가 닥친 주말 아침입니다.

실은 올해 너무 일도 많이 해서 오른 손가락 통증이 생겨 정밀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입니다.

글 쓰는 것도 미루다 추억이 몽글 거려 잠시 끄적여 봤습니다.

끝으로, 앞서 걷던 모녀의 모습에서 나의 어머니와 나의 외할머니를 소환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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