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의 집밥

이십 년의 인연의 그분들과

by emily

센다이에서 귀국 한 해가 정확히 밀레니엄의 해 2000년이었다.

어린 시절 , 꽤 규모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 출신인 나의 경험상 두 아이들에게 내가 경험한 교회학교의 분위기를 알려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당시 옥한흠 목사님이 계시던 사랑의 교회가 가장 내 마음을 건드렸다.

난 외할머니 때부터 철저하게 감리교 출신이었지만 , 사실 모태 신앙의 뜨뜻미지근함도 , 여기저기 떠 돌며 ( 광양. 서울. 센다이 당시로는 그랬다 ) 교회 봉사를 맡다 보니 솔직히 나 자신을 위한 조용한 예배 올리기가 간절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사랑의 교회,

2001년부터 소속이 되어 난 평신도 공부부터 다시 시작했었고 두 아이는 각각 초등학교 유년부에 배치됐었다.


오늘은 그 시절부터의 인연인 분들과의 식탁을 적어보려 한다.


이제는 언니가 돼주신 나보다 열 살 위인 그분은 유치원 원장님 출신이 셨으며 , 오랜 기간 맏며느리로 시어머님을 섬겼던 분이 셨다.

우리 둘 다 타 지역에서 이사와 맺어진 다락방의 구성원으로 만나진 인연이 정확히 스무 해가 되었다.

아들만 둘이신 그분을 보며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다.


이십 년보단 두세 해가 빠지긴 하지만 어쩌다 보니 대학 선후배 사이인 걸 알게 된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그녀는 남매를 키우는 아주 차분한 여인이었다.

예민한 남편분의 성향이 가끔 나의 옆지기 와도 같아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지만 , 무엇보다 나에게 없는 그 차분함에 매료되었었던 기억의 그녀도 있다.


열 살 위의 또 다른 분은 나에게 세 번째의 다락방 시절 순장님이셨던 인연이다. 대기업 임원의 사모님이시면서도 나타내지 않으시고 겸손하시며 정적이신 한결같은 분이시다. 몇 해 만에 뵈니 외손주들을 케어하시느라 많이 상하셔서 마음이 좀....


장남의 중 삼시절 전학 온 같은 반남 학생의 엄마였던 나보다 네 살 위인 집사님도 계시다. 마침 같은 구역으로 배정을 받으셔서 그렇게 이어진 인연, 그 아들은 막내라 교복을 우리 막내에게 물려주셨던 사실도 항상 고마왔던..


맨 마지막으로 이어진 키가 훤칠한 그녀는 내 동생과 같은 말띠라 친근하다. 두 해 전 따님의 결혼식 뒤에 다시들 새 단지로 조성된 옛집들로 이사를 오시니 더없는 반가운 이웃들이다.

요사이 다시 이사를 앞둔 날 위해 번개도 자주들 소집하신다.


이 중에 두 분은 멀리 이사를 가셔서 , 올 해가 가기 전에 다 같이 모이자고 약속을 잡았었는데 코로나 변이가 종잡을 수 없는 변수가 되기도 했고 , 나 역시 새해에 이사를 가는 사택에서는 비좁고 멀어서 누군가와의 집밥이 수월치 않을 것을 잘 알기에 , 그냥 간단히 우리 집서 비 좁은대로 모이자고 제안을 드렸고 모두들 손 아픈 나를 걱정하시며 간단히 시켜먹자고 하셨던 모임이 어제였드랬다.


매 번 같은 말이지만

오모테나시 (おもてなし)

정성을 다한다는..


오랜만에 차슈를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들었다.

남겨서 주말에 식구들도 주어야지 싶어 여유 있게 양을 조절했고, ( 오랜 시간을 들여 뭉근하게 졸이다 보니 실은 하나도 안 남았다.)

이 겨울 대표 샐러드로 자리 잡은 일본식 컬리플라워 샐러드

나의 스토리가 들은 일본식 달걀말이,

또한 요즘 계속 이어지는 팥 찰밥도,

굴로 시원하게 순두부도

미시간 시절의 테이블보 이젠 바랬다 십 년이 넘어가니...

그리고 지난 주말 베프팀도 맛나게 먹은 멍게 젓갈도...

실은 , 고기가 꽤 남으려나 했었다만 어찌나 맛있게 드셔주시는지들....

이렇게 다 같이 식탁을 대접한 지가 까마득한 시절의 인사동에서였었구나..


어제의 디저트로는 내가 준비한 밀도의 슈톨렌과

다들 오시며 뭘 그리 챙겨 오셨던지, 현미부터 시작해서, 생크림 딸기 케이크, 백화점의 맛있는 크레페와 특별히 날 위한 앙증맞은 무스들, 때마침 필요했던 수면양말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시며... 안흥 찐빵까지...

다같이 촛불도 밝히며 올 해의 마감을 기도했다
커피를 마시고 그녀들과 삶의 이야기 꽃을 피웠고 ,

그것도 어쉬 워 다시금 잠시 모두와 순간이동은 프랑스로 티타임

먹고 먹고 다들 배가 터질 것 같다 하시면서도 그 어느 분의 디저트도 다 같이 맛봐야 한다는 내 고집에 웃으며 해질 녘까지.. 우리는 그렇게 훈훈했었다

제주의 감귤도 맛났다.

핑크공주이신 언니가 먼저 핑크를 휙 짚으셨고 티를 준비하던 나에겐 백색의 양말이...


결국 안흥찐빵은 냉동실로 향했고 , 지금에야 이 글을 끄적이며 먹고 있다.



큰아이가 새로 트리를 장만 안 하는 엄마에게 작은 트리를 선물해 주었고 , 난 이사 전에 정리의 차원으로 후배가 줬던 테이블보를 펼치고, 미시간 시절 친구가 준 소소한 것들로 한편을 장식했다.( 이사 한 지 벌써 오 개월이 지나고 있기에 미리 크리스마스로!)


어제저녁 , 다 정리하고 돌아서니 창가론 예쁜 달님이 ,

창가 옆 구석엔 반짝반짝...


행복이 별거더냐

날 소중히 아껴주는 인연들이면 충분하다 싶다.

십 년 위 인생 선배님들께 또 배웠고 나보다 어린 그녀 들에게도 배운다.

삶은 그렇게...


오늘 새벽 말씀에선 말씀을 붙잡으라셨다.

당신을 위해 살고 있는가?

주님의 길을 위해 살고 있는가?

물으신다.



따뜻한 수면양말에 그녀들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