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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봄

그 찬란한 4월의 마지막 날 , 장도 청해진 유적지에서

by emily

어쩌다가 갑자기 완도로 향하게 되었었다.

3시간이면 갈 줄 알았다는 옆지기 님..


네비를 쳐보니 4시간이 좀 넘는 듯

거의 중부고속을 타고 서울로 가는 소요시간과 비슷?

어찌 됐든 결정은 옆지기 몫인지라..


신부산항 화전단지로 근무지를 옮긴 지가 8년이 넘어선다.

신혼시절 광양 근무 지덕에 실은 남쪽은 낯설지 않다.


몇 번인가 남도를 돌던 시간에 어쩌다 보니 항상 완도는 그냥 스쳐지나 버렸었다.

그 완도를 찬란한 봄 4월 마지막 날 ,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조금은 흐린 하늘 아래에 제일 먼저 장보고의 유적지와 박물관으로 총총총..

태풍이 불어 배가 파손되더라도 무역품들의 훼손을 막기 위한 배 안쪽의 구조가 흥미로왔다.

잠시 여기서 위키백과에서 찾아본 청해진과 장보고에 대해 남겨본다


완도 청해진 유적(莞島 淸海鎭 遺蹟)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734 장도(將島)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군진(軍鎭) 유적이다. 1984년 9월 1일 사적 제308호에 지정된 '완도 청해진 유적(莞島 淸海鎭 遺蹟)'은 완도에서 목교(木橋)로 이어진 장도라는 섬이다. 완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쯤 되고 하루 2차례씩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도 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무장 장보고 장군은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삼해(三海)의 해상권을 장악한 해상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완도 청해진 유적지는 발견 전까지 인근 지역 주민들이 밭으로 사용하는 등 오랜 세월 땅 밑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1959년 태풍 사라 이후에 드러난 목책(원목 열)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91년에서 1996년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철저한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의 유적지가 완성되었다.


장도를 향해 총총총..


전체적인 모습을 먼저 담은 이유는

역사적으로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가장 중심을 이룬 곳 이기도 한 까닭이다.

장보고와 청해진 , 해상무역 , 실크로드 등 중고등 시절 역사를 좋아했건 내게 무척 감동이 가득한 장도였지만 그와 더불어 내 눈에 더 가득 담긴 풍경은 실인즉, 장도 역사유적 속의 초록빛으로 빛나던 나무들과 우연히 만났던 해설사 선생님께 듣게 된 장도에서 바라다 보인 고금도, 마량 , 신지도 등에 관한 우리의 역사적 인물들과 귀양 등에 대한 이야기엿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던 풍경중 가장 인상적이던..(내 맘에.. 저분을 산등성이 끝자락에서 만났다 )


고금도 , 마량 쪽에서 많은 분들이 귀양을 지내셨다고 한다.. 그중 지석영 선생님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신지도 역시 귀양생활을 하신 분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마지막 한 장이

찬란한 4월 마지막 날 내 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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