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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Aug 17. 2022

외가의 추억

와락 이란 단어가 떠오른...


늦은 결혼으로 아빠와 엄마에게 나란 존재는 엄청났었던 것 같다.

물론 1년 6개월 뒤에 태어난 남동생의 존재감은 그 당시 아들 선호에 따른 당연한 것이었겠지마는 말이다.


지난 3월 큰아이의 혼인예배는 정말 감사가 넘치는 시간들이었다.


코로나가 정점을 찍던 3월 중순으로 들어서던 어느 토요일,

모교회에서 혼인예배가  진행되던 그날은 낮 기온이 20도에 육박하는 화창한 날씨를 선사해주었고 , 또한 앞 팀의 취소로 그 넓은 예배당을 우리가 6시간을 넘게 독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바쁜 신혼부부가 이제야 그날의 추억들 의원 본을 보내주었다.


번잡스럽지 않아도 되던 상황 전개 덕에 찍으시던 기사님 두분도 , 참석한 모두 역시 여유 속에서 그날의 추억이 잘 각인되었다 싶다.


태어났을 땐 지아빠를 빼박은 듯하던 장남은 커가며 앉은 자세는 돌아가신 나의 시조부의 뒷모습 그대로였고, 눈썹과 눈매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판박이로 변해 버렸다.

가끔 난 순간순간 아빠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만큼 말이다.

어찌 태어난 띠까지 제 태몽을 꾸어주셨던 외조부와 똑같은 양의 자리인지.

..

나의 시조부도 나의 아버지도 내가 큰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던 임신 5.6 개월에 아빠가 먼저, 그 뒤를 시조부께서 하늘나라로 가버리셨었던 1991년이 돼 버렸었다.



이틀 전 받아본 사진 속에서 내 뇌리를 친 사진 두 장이 있었다.

조부와 손자의 와락.... 끌어안은 사진이 그것이었다.

장남이 크며 꼭 닮은 외조부가 계셨더라면 하는 아쉬움까지 들추어주었다.


"와락   "(흔히 허그라는 )

이 단어가 포용하고 있는 그 커다란 의미들이 날 조금은 아프게 했다.

어설펐던 부모라 아이들이 성장할 때  많이 격려해주고, 믿어주고, 안아주질 못했다.


우리가 많이 못 해준 몫은 장인, 장모님께서 품어주시기에 더 더우기 감사를 드려본다.

와락... 우리말로 이 표현이 더없이 간절하다.

사랑, 믿음, 신뢰, 격려,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큰 며늘아가의 밝은 웃음에 환해진다.

감사가 넘친다.

가족이던 ,  타인이든 간에 우린 서로 더 많이 서로를 와락~ 안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와락의 행동은  치유의 가장 첫 단계이자 완성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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