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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Jun 21. 2023

여름의 남녘

섬진강, 그리고 유월의 밤꽃내음

그러니까 거슬러, 나의 신혼시절이던 정확히는 1990년도 봄이었다.

새신랑의 근무지가 방위산업근무지인 광양의 포항제철소 연구소로 정해진건 결혼을 결정했던 1989년 늦가을이었고, 그렇게 난 조금의 망설임을 안은 채 당시의 붉은 벽돌집인 광양제철소 단지 내의 목련빌라에서 신혼살림을 그다음 해 4월 늦은 봄날 뒤로 시작했던,


사실, 단지 안은 당시로서는 최고로 쾌적한 환경의 주택단지가 조성된 있었다.


하나, 불과 두서너 정류장을 지나 단지 밖의 세상은 아직은 촌스럽고 작은 광양읍과 비포장도로로 연결된 광영이라는 옆동네, 거기서 옥곡을 거쳐 커다란 다리를 건너면 거기서부터는 전라남도가 아닌 경상남도의 하동지역으로 연결되는,,


나에게 그 크고 긴 다리 아래의 넘실대던 물은 바다라고 생각을 해버릴 만한 규모였던 기억, 그것이 섬진강 하류라는 사실은 내게 별천지를 선사했던 나의 20대 중후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전 어쩌다 구례부터 이어진 19번 국도를 지나게 되었었다.

섬진강변으로 이어지던 흐드러진 밤꽃의 비릿함을 맡으며 그 시절의 추억들이 그리움으로 번졌었다.

오래전 이인규 님의 지리산편지 중에서 몇 문장을 적어본다.(절대 정치적 연관성은 배제한다. 난 단지 그 계절의 글만을 기억할 뿐이다.)


남녘의 풍경을 남기며 무슨 밤꽃냄새와 불륜이란 단어를 거침없이 남겼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한 참전의 그곳의 추억의 풍경들이, 시인의 밤꽃 향기에 대한 글로 나의 지식을 넓혀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 불륜이라는 밤꽃의 풍경이 사무치게 그리운 추억이 되어서라고 해야 할지, 더 구체적으로 추억하자면, 섬진강을 바다로 착각했던 20대의 나, 그리고 하동 송림공원을 아빠와 잠시 걸었던 그 시간의 그리움, 그리고 어느 해이던가 40대 중반에 나 홀로 올라갔던 문수사에서 만났던 반달곰들의 겨울잠에서 깨어나던 모습, 19번 국도가 충남의 대둔산 끝자락에 끝난다는 지리적 사실까지 그 모두가 그리워서 그것이 나에겐 이인규 시인의 밤꽃 냄새, 또 다른 포괄적인 불륜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불륜의 밤꽃 냄새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인규 님의 지리산 편지 중에서 발췌-


밤꽃 피는 유월의 지리산은 현기증이 다 날 정도입니다.

피아골과 문수골 등 지리산의 아랫도리를 밤꽃 향기가 기습적으로 점령하는 바람에 온 산이 환하다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된 것이지요.

잘 아시다시피 비릿한  밤꽃  향기는 예로부터 남자의 정액 냄새로 비유되어 왔습니다.  한 번이라도 맡아본 이는 알겠지만, 사실 또한 그러하다 보니 '매화향'처럼 향기로 불리기보다는 왠지 조금 더 비하된 듯한 '냄새'로 더 잘 통하지요.

매화 향기를 매화 냄새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또한 밤꽃 냄새를 밤꽃 향기라고 부르지는 않으니까 말이지요.

향기라는 말이 단순히 사대주의적인 한자여서 더 품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더 포괄적이여 모호한 우리말 '냄새'로 은근히 격하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지극히 꺼리던 유교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르지요.

생략,,,,

말하자면 밤꽃 피는 유월은 불륜의 달인 것이지요

생략,,,,


밤꽃 피는 오뉴월에 생각해 봅니다.

한국전쟁과  같은 '민족적인 불륜'과 가정이 파괴되고 당사자들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남녀의 불륜', 그리고 세상살이가 힘겹고 외로울 때면 집을 뛰쳐나와 지리산을 향한 그리움을 25년간이나 속으로 불태운 강영환 시인의 '아름다운 불륜'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어디에서 무엇으로 서야 하겠는지요.

지리산의 밤꽃 향기가 던져주는 이 불륜이라는 화두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여 인생의 끝없는 '불무장등'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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