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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Jul 07. 2024

여름의 남녘

익산의 역사를 거닐다

옆지기가 회사 일로 출장을 가곤 하는 전북 익산,

내가 어릴 적에 들었던 지명으론 실은 익산보다는 이리역이라는 고유단어가 더 친밀한 곳이다.

지난 6월 첫 연휴 기간에 새 보금자리인 수지로 올라오던 길에 들렸었다.

  내가 좋아하던 역사의 한 부분에서 들려오던 백제 문화 속의 미륵사와 미륵사지석탑이라는 유산이 그곳에 존재하는 사실에 지금은 사라진 미륵사 터와 미륵사지석탑이 궁금해졌었다.


갑작스레 4주 차에 수술이 결정된 큰 며늘아가 소식에  서둘러 올라오려던 차에 장남의 연락이 왔었다. 내용인즉슨 , 병월엘 오셔도 면회도 안 되는 상황이니 그냥 기도만 해주시고, 부모님 일정대로 움직여주시라는...

그렇게 두 손 모아 기도 하며 이동한 곳이 익산이었다. 저녁에 도착하고 나니 미륵사터는 다음 날 아침의 여정이  돼버렸었고 , 일찌감치 익산의 유명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가득 채우고, 서둘러 그역 사의 장으로 발길을  옮겼었던  초여름의 시선을 담아본다

익산의 유명한 새우탕은 도착한 날 저녁으로 !
익산의 역사속맛집 일해옥! 메뉴는 단 한가지 ,콩나물국밥
초록너머로 복원시킨 석탑이 눈부셨다

멋들어진 박물관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가 보았다.


뜨거운 볕아래 지금은 흔적뿐인 그곳의 역사가 파노라마로 스쳤던 6월 초의 익산을 놓아본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참고자료는  아래에 남겨본다.


국보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


시대백제


종류/분류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크기높이 14.24m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 말기의 화강석 석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관련 불탑이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미륵삼존을 모시기 위해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로, 서원 금당 앞에 있는 이 석탑도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 석탑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탑이며, 목탑의 구조를 석탑으로 재현하였다. 무너져서 거의 절반 정도만 남은 탑을 2009년 해체·수리하다가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같이 발견된 탑지에서 왕비가 639년(무왕 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다.


네이버지식참고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무왕 당시 창건한 사찰. 사적.

내용
백제 무왕 때 창건하였으며, 삼국시대 절 가운데 백제의 절로는 최대의 규모이다.

백제무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에 행차하였을 때 용화산(龍華山) 아래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났으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왕비가 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청하였으므로 지명법사(知命法師)의 도움으로 못을 메워 절을 창건하였다. 2013년부터 시작된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절을 창건한 사람이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절에는 미래불인 미륵이 3회의 설법으로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용화삼회 설(龍華三會說)에 입각하여 전(殿)과 탑과 낭무(廊廡)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 이 절터는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인 서동(薯童)과 선화공주(善化公主)와의 설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으나, 719년(성덕왕 18) 9월 금마군(金馬郡)의 미륵사탑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전한다. 이는 미륵사의 탑에 벼락이 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407년(태종 7) 나라에서 여러 고을의 자복사찰(資福寺刹)을 정할 때 충청북도 청주의 보경사(菩慶寺),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의 진구사(珍丘寺) 등의 여러 사찰과 함께 자복사찰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사찰이 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절터 전체는 196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92년 절터 주변에 흩어진 옛 석재들을 일부 재사용하여 동탑(東塔)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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