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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Chae Oct 05. 2019

껍데기는 영혼을 담는 그릇

Berlinde De Bruyckere (베를린더 더 브라위케러)

표지 작품: Quan, 2010. Wax, epoxy, iron, cushion. © Berlinde De Bruyckere


 담요, 그것도 어딘가 낡고 헤진 담요,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재현한 인체의 창백한 피부, 왁스로 표면을 덮어도 그 결이 드러나는 나무토막, 그리고 말의 가죽… 벨기에 작가 Berlinde De Bruyckere의 작품의 주요 소재는 너무나 실존적이고,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 또한 매우 직관적이다. 그의 작업은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하기에 좋은 편은 아니다. 작업에 등장하는 모든 ‘껍데기’들은 우리 눈앞에 너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실제 크기의 말 가죽이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약간의 혐오감과 충격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충격성은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yBA 작가들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De Bruyckere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화려한 스펙터클보다는 오히려 고요한 적막과 공허다. 


Embalmed - Twins Ⅰ, 2017. Wax, fabric, leather, rope, wood, iron, epoxy. Photo by Mirjam Devriendt © Berlinde De Bruyckere


 16세기 독일 르네상스 화가 Lucas Cranach the Elder(루카스 크라나흐)에 홀딱 빠진 채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Berlinde De Bruyckere는 자연스럽게 초기부터 구상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의 유년시절에 많은 영향을 미친 선배 화가가 루터의 종교 개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회화에 담아냈듯, De Bruyckere의 구상 작업은 단순히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내는 데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암시한다. 전쟁과 홀로코스트로 인간이 얻은 상처는 그의 주요한 작업 주제이며 이것은 머리가 없는 인간의 신체, 힘없이 쓰러져있는(종종 무더기로 쌓여있는) 말이나 나무 등으로 표현된다. 


No Life Lost Ⅱ, 2015. Horse skin, wood, glass, fabric, leather, blanckets, iron, epoxy. Photo by Mirjam Devriendt © Berlinde De Bruyckere

We are all Flesh, 2009. Wax, polyester, steel on wooden plinth. © Berlinde De Bruyckere


 그러나 그의 작업은 늘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두 개의 말 형상이 벨트로 묶여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은 집단 학살과 전쟁의 참혹함을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그 두 ‘생명’의 끈끈한 연대와 애정처럼 보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사용했던 담요를 자연 속에서 스스로 썩어가게 내버려둔 것을 겹겹이 쌓아둔 형상은 마치 시체 더미와 같은 끔찍함과 동시에 그 담요를 사용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 다단한 층위로 깊어져 감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껍데기’를 보여주면서 오히려 그 안에 있을 것에 주목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역설은 De Bruyckere의 특화된 기법이다.


Installation view of ‘Berlinde De Bruyckere: Stages & Tales’ at Hauser & Wirth Somerset. Photography: Mirjam Devriendt. © Berlinde De Bruyckere.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허물어져 가는 인간과 동물의 사체, 내장을 연상시키는 그의 조각을 보고 관객들은 섬뜩한 거리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De Bruyckere의 작업은 한 발 물러섰던 관객의 시선을 다시 끌어들여, 그 껍데기 자체가 바로 ‘영혼을 담는 그릇’임을 상기시킨다. 


글/ Emily Chae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 갤러리에 소개된 그의 자료와 CV, 그리고 유튜브 ‘Lousiana Channel’의 Berlinde De Bruyckere 인터뷰 자료(Berlinde De Bruyckere Interview: Surfaces are Containers of the Souls)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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