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1) : 들어가는 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로사는 종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머리로 생각하는 걸 그냥 넣어두지 말고 입으로 바로 뱉어내!” 아들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도 말 한마디 못 하다가 결국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친구가 안 되어서 한 말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아서다. 말해야 하는 순간을 놓쳐 버리기도 하고,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말을 못 꺼낸다. 하지 않은 말 때문에 오해가 깊어져 관계가 끊어지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에 입 닫고 있다가 후회와 상처가 깊어지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힘없는 말은 무시당하고, 날카로운 말은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오만한 말은 상대를 멀어지게 하고, 지나친 겸손의 말은 진심이 없어 보인다.
같은 말인 것 같지만 ‘말 잘하기’와 ‘잘 말하기’는 다르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막힘없는 언변으로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 정치토크 채널에 자주 출연하는 한 정치 평론가는 유창한 말솜씨의 비법을 이렇게 공개한다. ‘말 잘하는 사람의 말을 반복적으로 따라 하라’. 실제로 그는 시간 나는 대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앵커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고 한다. 유창함이 연습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잘 말하는’ 사람은 굳이 유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힘 있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이다. 임권택 감독은 눌변이다. 필요한 말 외에는 잘하지 않는 데다, 말이 느려서 답답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듣는 사람을 집중시키고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다. 배우 강수연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다른 어떤 긴 애도의 말보다 ‘감사한 배우였어요’라는 그의 말 한마디가 가장 슬프게 와닿았다.
막힘이 없고 앞뒤가 맞는 말은 분명히 좋은 전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때론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말이 소음으로 들리고, 몇 마디 안 되는 말이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말의 힘은 길이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유창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의 힘은 진심에서 나온다. 진심이 있는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거문고의 한 줄을 튕겨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일이 일어나게도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 독한 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혼잣말로 해버리고 접어야 할 말을 생각 없이 쏟아 낼 수 있는 채널이 지나치게 많다. 꼭 할 말만 진심을 담아 예쁜 말투로 할 수는 없을까. 정용준의 소설 『바벨』은 독특한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린다. 말을 빼앗긴 세계다. 말을 하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펠릿’이라는 물질이 몸 안에 축적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펠릿’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가시 있는 말들, 상대에게 평생 상처로 남을 날카로운 말들, 폭력에 버금가는 말들이 낳은 앙금이다. 악취가 심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짐승의 썩은 내장’과도 같은 냄새를 뿜어내는 ‘펠릿’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면, 쉽게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을까.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나의 잘못을 꾸짖는 사람이 속사포 지적을 하기보다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곤조곤 말해주면 좋겠다. 사랑의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정작 아끼는 마음이 없는 사람보다는, ‘밥은 먹었니?’라는 짧은 말 한마디로도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제 우리는 ‘잘 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는 소설 두 편을 만나보려 한다. 그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설득력 있게 말하는 소설을 읽으며, ‘잘 말하는’ 사람 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