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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Oct 30. 2022

우리는 다만 땅을 찾아 헤매는 파편들

셍존이 의무라는 생각, 해보셨나요(3) : 『스페인 여자의 딸』

우리는 다만 땅을 찾아 헤매는 파편들


『스페인 여자의 딸』의 주인공 아델라이다 팔콘이 사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는 ‘약탈’의 세상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산유국으로서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부유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와 마두로라는 두 대통령의 ‘재정 환상(공짜 서비스로 인해 발생하는 현재의 재정문제를 다음 정권의 누군가가 해결하리라는 환상)’ 때문에 지옥 같은 경기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으로 인한 초인플레이션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국가를 이런 상황까지 몰고 온 것은 정부의 무능함과 부패였다. 1998년에 집권해서 2013년에 사망하기까지 차베스 대통령의 관심은 오로지 정권 연장에 쏠려 있었다. 집권 초기에 운 좋게 유가가 상승해서 재정이 풍부해진 차베스 정부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저가 주택 공급에 석유자본을 쏟아부었다. 그의 복지 포퓰리즘은 성공했고 정권 연장은 쉽게 이루어졌다.


모두가 공평한 복지를 누린다는 사회주의 이상을 기치로 내건 정권의 연장이 국민을 위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부작용은 서서히 드러났다. 재정 마련의 원천인 석유산업에만 신경 쓴 나머지, 다른 산업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까지 음식, 의약품, 화장지를 사러 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복지 포퓰리즘에 재미를 붙인 정부는, 유가 하락으로 정책의 지속적 실현이 어렵게 되자 화폐를 무분별하게 찍어내기 시작했다. ‘가치 없는 마천루, 그게 국가화폐였다’라는 아델라이다의 말처럼, 베네수엘라의 국가화폐인 볼리바르의 가치는 끝없이 추락해서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단위 가치가 낮은 화폐가 되기도 했다. 초인플레이션의 시대는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의 시대까지 이어졌고, 정부와 조직폭력집단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공생관계로 발전했다. 월급으로 돈을 받는 것보다는 라면 한 봉지를 받는 것이 더 나은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약탈의 세상


『스페인 여자의 딸』은 이처럼 절박한 경제 상황 속에 놓여 있던 베네수엘라를 배경으로, 엄마와 똑같은 이름을 쓰는 아델라이다 팔콘이라는 삼십 대 여성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아델라이다가 ‘엄마를 묻었다’라고 말하며 시작된다. 아델라이다는 신문사 편집자로서 사회적 입지를 어느 정도 다졌지만, 나무관을 살 돈이 없어서 합판관에 엄마를 넣고 매장지로 향한다. 무책임한 아빠 때문에 평생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그녀에게 엄마를 잃은 두려움은 컸다. 하지만 그녀의 두려움은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약탈의 세상은 무덤도 그냥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좀도둑이 안경을, 구두를, 심지어 유골까지 훔쳐 가겠다고 엄마의 무덤을 파헤치리란 생각을 하면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술이 국가 종교가 되어버린 그 무렵, 뼈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그 순간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나는 온몸으로 울었다. 엄마 때문에, 나 때문에, 둘도 없던 우리 때문에 울었다. 밤이 오면, 아델라이다 팔콘, 우리 엄마가 산 자들에게 휘둘릴 그 무법지대를 생각하며 울었다. (p. 35)     


무너진 의료시스템 때문에 약조차 충분히 써보지 못한 채 맞이한 엄마의 죽음은 아델라이다에게 있어서 앞으로 다가올 상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 조직이 없는 국가에서 유일하게 제 기능을 하는 것은 차베스 정부가 육성하는 ‘혁명의 아이들’ 뿐이었다. 재정이 바닥난 정부는 그들에게 지원금 대신 약탈의 권한을 보장해주었고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폭력조직은 그들의 총구를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겨누었다.


아델라이다도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다.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빼앗겼다. 밥 그릇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고, 아끼던 책들은 약탈자들을 위한 화장실 휴지가 되었다. 살 곳도 없어졌지만, 집과 함께 약탈당한 소중한 추억들이 서러워 아델라이다는 울고 또 울었다.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


엄마를 잃고 집조차 잃어, 몸도 마음도 둘 곳이 없어진 아델라이다에게 ‘으뜸 패’ 같은 기회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옆집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가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페인 여자의 딸, 아우로라는 스페인 국적을 갖고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삶에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희망으로 다가오자 아델라이다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베네수엘라 여자, 아델라이다 팔콘이 아닌 스페인 여자, 아우로라 페랄타로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압권이 될 장면이 이쯤에서 펼쳐진다.      


거리에서 사람이 죽고 죽이는 판에, 시체 한 구가 떨어진다 한들 이상할 게 뭐 있겠는가? 하늘에서 시체들이 비처럼 내리길. 은유 말고, 정말 그렇게…. 그녀를 밀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힘껏 밀었다. 시체처리가 아니라 출산 중이기라도 한 듯…. 아우로라 페랄타의 허리가 창틀을 넘기자, 무게 때문에 몸이 기울어졌다. 막대기 같은 그녀의 다리가 공중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생명과 존엄을 빼앗긴 덩어리. 내 잘못이 아니었다. 아델라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발코니 바닥에 웅크린 채 되뇌었다. (p. 143)   

  

이후 그녀는 아우로라 페랄타가 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신분증을 위조해서 여권을 발급받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우로라의 인생으로 뛰어들기 위해 집 안에 남아 있는 그녀의 흔적을 뒤져가며 조사하고 연구한다. 죽은 이웃의 시체를 창밖으로 내던지고, 문서 위조와 사기의 죄를 저지른 아델라이다. 이 모든 불법행위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라고.


공항에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마침내 바다 위를 날아 스페인에 도착한 아델라이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이겼다. 배에 작살이 꽂힌 채였지만, 이긴 건 이긴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라고 말했다. 주어진 고난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겨내고자 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아델라이다에게서 발견한다. 그녀의 구원은 그녀 스스로 일구어낸 것이다.      


▫️새롭게 잉태되기를


태어난 나라를 ‘쓰레기와 도둑질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엄마의 죽음과 함께 모국을 영원히 떠나는 아델라이다의 모습에, 베네수엘라 태생이면서 스페인 이민의 길을 택한 작가의 모습이 겹친다. 작가는 헌사에서 ‘나보다 먼저 이 땅에 온 여자들과 남자들에게. 그리고 이제 도래할 이들에게’라고 쓰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이 땅’은 스페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미얀마,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자신을 낳고 길러준 땅으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하는 수많은 난민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희망의 땅’을 대신하는 명사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더 이상 자신을 품을 수 없게 될 때 느낄 슬픔은 상상하기 힘들다. 낯선 나라에 새 뿌리를 내리고 문학적 성과를 거두며 살아가는 작가처럼, 낯선 땅에 도착해서 첫 초인종을 누르는 아델라이다도 그 땅이 잘 품고 거두리라 믿는다.


몇 달 전 신문 기사에서 본 가슴 아픈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베네수엘라 난민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아이는 가족과 함께 비밀리에 국경을 넘으려다 검문소에서 발각되어 소환을 앞둔 상태였다. 겨우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를 울게 만든 것은 어떤 종류의 절망이었을까. 절박한 생존의 몸부림을 그토록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서러움이었을까. 아니면 실패한 탈출이 어떤 세상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지 너무 일찍 알아버린 슬픔이었을까. ‘우리는 다만 땅을 찾아 헤매는 파편들’이라는 작가의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살기 위해 집을 떠나고 모국을 등진 사람들의 수가 이천오백만 명을 넘어섰지만,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재정착을 돕는 나라의 수는 삼 십여 개국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델라이다는 운 좋게 비행기로 바다를 건넜지만, 보트 피플로 ‘죽음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 난민들이 한 해에만 이 천명을 넘어선다. 베네수엘라 여자의 딸 아델라이다 팔콘이, ‘스페인 여자의 딸’로 제2의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그리고 아직도 땅을 찾아 헤매는 지구상의 모든 아델라이다들이 새로운 땅에서 다시 한번 잉태될 기회를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구유 옮김, 은행나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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