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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Dec 21. 2022

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

생존이 의무라는 생각, 해보셨나요 (1) : 들어가는 말

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특이한 ‘안내자’가 등장한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 고객 맞춤형 컨설팅을 해주고는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난다. 그의 고객들은 ‘고객이 될 만큼 충분히 절망’하는 사람들이며, 가도 가도 달라질 게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신문광고를 통해 안내자가 고객을 찾아 나선다. 잠재성을 가진 고객을 소질 있는 고객으로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삶의 궤도로부터 튕겨 나가고 싶다고 이미 몇 번쯤은 생각해 본 사람들이니, 그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하면 된다. 단 한 번도 자기 뜻대로 살아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고객들은 생명 파괴권만큼은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다. 이제 안내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며 손만 내밀면 끝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 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문학동네, 2000, p.140)     


소설 속 유디트처럼 ‘멀리 다녀왔는데도 바뀌는 게 없어’라고 절망하는 당신에게, 그만 걸어가고 싶지 않냐고 누군가 와서 속삭인다면, 그가 바로 당신의 ‘파괴자’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고된 당신은 그의 말에 귀가 쫑긋해질지도 모른다. 내미는 손을 잡아볼까 하는 섣부른 충동에 빠질 수도 있고, 들끓던 파괴 욕구가 비등점에 도달해 버리는 위험천만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오늘 저녁 뉴스는 세 명의 동반 자살 소식과 함께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2 자살 예방백서’의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또다시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 서른여섯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니 충격적이고도 우울한 소식이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육중한 삶의 무게를 새털처럼 가볍게 여기게 되었을까. 생을 스스로 내려놓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월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 마음속에 여태껏 발견 못 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어라.’ (이레, 2011, p.456)


그렇다. 소로의 말처럼, 당신의 우주 안에는 아직 당신도 발견하지 못한 별이 천 개나 더 있다. 자신을 파괴해 버리면, 한 번 반짝거려 보지도 못한 이 별들도 함께 스러진다. 누가 알겠는가. 천 개의 별이 동시에 켜지며 당신의 우주를 환하게 하는 날이 바로 내일이 되고 모레가 될지. 그러니 부디 더 빨리 죽지는 말자. 당신이라는 소중한 우주의 빛을 일찍 꺼버리는 일은 하지도 말자.


이제 우리는 소설 속 두 인물을 만나보려고 한다. 시대적 배경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사는 것은 효용적 가치를 넘어서는 일임을,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한 일임을 일깨워 주는 인물들이다. 생존이라는 엄숙한 책무를 눈이 저절로 감기는 그 순간까지 성실하게 이행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안내자들을 따라 오늘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계속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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