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근교 여행 그리고 몰타로 돌아가기
4일 차 : 베살루, 지로나, 또사데마르 투어 + 급 저녁 약속
5일 차 : 캄프누 경기장 투어 신청 X (경기가 있어서 운영 X) → 대신 마레 마그넘 쇼핑몰 & 저녁에 몰타 도착
전체 여행일을 3박 5일로 잡았지만 세부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바르셀로나에 있으면서 쇼핑만 하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 무언가를 알아보고 돌아다니기에는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동행할 사람을 구해서 다닐 수도 있었지만 해외여행에서 현지 도둑들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섣부른 도전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4일 차에도 어김없이 투어사를 통해 근교 여행을 떠났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거리를 걸어서 집합장소에 도착하니 그 투어를 신청한 사람은 나 포함 꼴랑 4명이었다. 그동안에는 여사장님 그리고 다른 직원분들과 함께 다녔는데 그날은 경상도 억양이 가득한 남자 사장님과 함께 떠났다.
사장님은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청소년기 때 이민을 갔다. 거기서 학교생활을 하다가 한국사람과 만나 결혼을 했는데 그분이 바로 그동안 함께했던 여사장님이었다. 운전을 하시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카탈루냐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왜 지역감정이 생겼는지 그리고 최근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됐다.
베살루에 다 왔을 때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마을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후에는 꽤나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마을 초입부 관광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우산 삼아서 가리고 다녔다.
관광 안내판 앞에서 간단하게 설명을 들은 다음에 개별 관광 시간이 주어졌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한적했다. 비가 와서 꼼꼼하게 둘러보지는 못하고 그냥 걷기만 했는데도 골목 사이사이 그 동네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무념무상으로 돌아다니기 참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순간은 이때였다. 그냥 어기적 걷고 있는데 어떤 집 담장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착각 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봤는데 대문 담장 너머로 오렌지 꽃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진정한 네롤리 향인가!!! 비 때문에 꽃잎과 나뭇가지 향까지 같이 나는데 엄청난 황홀함을 느꼈다. 그동안 학원에서 케미컬 향만 느껴보다가 천연의 풍성함을 느껴보니 역시는 역시였다. 비를 맞고 있었지만 의외의 발견에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베살루 관광을 마치고 지로나(Girona)로 갔다. 헤로나로도 알려진 이곳은 스페인어로 읽느냐 카탈루냐어로 읽느냐의 차이가 있다. (스페인어로는 '헤로나', 카탈루냐어로는 '지로나')
여기는 따로 종이 지도가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이 갖고 있던 pdf 자료를 참고해서 다녔다. 그날 결혼식이 있었던 건지 사자상이 있는 산 펠리우 성당 앞에는 말쑥하게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이렇게 관광을 시작하는 부분부터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걸로 봐서는 이동 전략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비가 내리는 바람에 별다른 전략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어떤 스페인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내 팔을 잡고 끌고 가셨다. 나는 이정표라도 보여주시는 줄 알고 따라갔는데 갑자기 멈춰 서서는 뭐라 뭐라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스페인어를 모르는지라 할아버지가 무슨 설명을 하는지 단 1도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 호응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서 결국 "Si"만 반복해서 말하고 빠르게 헤어졌다.
<푸른 바다의 전설> 드라마에 나온 장소와 영화 <향수>에서 주인공이 향수를 만들었다는 곳을 지나쳐 보는 등 이 지역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이 날 점심은 사장님 추천 장소 중 한 곳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1인 자리를 안내받고 난 후 열심히 메뉴판을 정독했다. 생선요리와 화이트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메뉴판을 본 즉시 생선의 이름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냥 배고프니까 음식이 나오자마자 열심히 먹은 기억밖에 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래서 에펠 다리를 건너가서 장터 구경을 한 다음 블랜딩 차 3종을 싸게 구입했다. 그렇게 에펠 다리 구경까지 마치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투어 마지막 여정인 또사데마르로 갔다. 이동하는 도중에 차 안에서는 투어인들끼리 서로의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퇴사자 인 더 하우스였고, 부부는 동반 퇴사자의 길을 걷다가 용기 내서 유럽여행을 다니는 중이었다. 나머지 한 분은 직장을 다니던 도중에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운 좋게 엘 클라시코 경기 티켓팅에 성공했고 이김에 관광까지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도 유명한 곳인지 날씨가 오락가락하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었다. 함께 투어를 다니는 사람 중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베살루에서부터 혼자서 비 맞으며 촐랑촐랑 다니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둘이 대화가 잘 통한 나머지 대낮에 카페에 가서 샹그리아를 퍼마시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저녁까지 같이 먹게 됐다. 가끔 이럴 때 보면 낯을 안 가리는 성격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운이 따르게 된 거라고 느꼈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캄프누 경기장 투어를 하지 못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늦게 알게 된 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실제로는 이마를 쳤지만...) 경기장 근처라도 구경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날은 민박집 체크아웃을 하고 몰타로 돌아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오래 관광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일요일에는 쉬는 상점들이 많았다. 갈 곳이 없어서 한참 동안 고민하던 찰나에 마레 마그넘 대형 쇼핑몰은 일요일에도 연다는 정보를 얻었다. 모든 짐을 다 싼 후 사장님께 가방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쇼핑몰에 갔다.
오전 10시 반 정도였나? 은근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1층부터 천천히 둘러봤다. 대부분 패션, 화장품 관련 매장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그중에서 FC 바르셀로나 굿즈를 파는 매장을 발견했다. 보통 바르셀로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축구 유니폼을 파는 곳들도 많았다. 하지만 비공식 판매점들은 부르는 게 값일 수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공식 판매 샵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샵 안에는 바람막이, 유니폼, 가방, 타월, 문구류, 기타 액세서리 등 갖가지의 아이템들이 있었다. 나는 바람막이를 사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기겁을 할까 봐 삼색 볼펜과 비치타월로 타협을 봤다. (이 비치타월도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네에 두고 온 지 2년째다...)
한국에서부터 익히 들어온 이탈리아 저가 화장품 브랜드 'KIKO' 매장에 들어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기도 했다.
1층에는 더 이상 둘러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층으로 올라가 봤다. 그런데 저 멀리서 익숙한 가락이 들렸다.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 노래였다. 무슨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 중인 건지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외국인 학생들이 누군가의 지도 아래 안무를 연습하고 있었다. 지도하는 사람도 외국인, 연습하는 사람도 외국인이어서 너무 신기했다. K-pop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쇼핑몰에서 빠져나와 조그마한 규모의 벼룩시장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서 보증금과 가방을 찾아 나왔다.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공항리무진을 기다렸다 탔고, 공항에 도착해서 라이언에어 체크인을 빠르게 마쳤다.
너무 배가 고파 공항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서 한입 베어 물었다. 샌드위치 안에 들어있는 햄에서 암내가 느껴졌다. 구매 실패였다. 그래도 먹을 거를 함부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유럽 항공사들은 연착이 기본 공식 룰인 건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탑승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서도 버르장머리 없는 꼬꼬마 덕분에 기분이 안 좋아진 상태로 2시간을 버텨냈다.
몰타에 도착하니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3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몰타로 돌아온 기분은 안심이 되면서도 그냥 So-so 였다. 뭔가 엄청 뿌듯한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별 느낌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고 나서 씻으러 화장실을 들어갔다. 그런데 샤워 부스 유리에 A4용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공사를 해야 하니 당분간 샤워부스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멍하니 샤워부스만 바라보고 있으니 푸미가 다가와 자신이 메시지 보낸 거 못 봤냐고 물었다. 뒤늦게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푸미가 참고하라며 집주인이 적어놓은 메시지를 찍은 사진과 메시지가 보내져 있었다.
실성한 듯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뜻밖의 엔딩이었다.
몰타에서 바르셀로나 여행하고 돌아오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