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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Feb 23. 2022

아침마다 일어나는 전쟁

콩나물시루에서 터져 나오는 곡소리

어릴 때는 택시나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제일 좋아했어요.


어린 저보다 키가 한참 큰 사람들이 많아서 답답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됐고, 등하굣길에 꼭 타야만 하는 것이 되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알게 됐어요.


도로에는 승객들을 내려주고 태우기를 반복하는 버스, 택시뿐만 아니라 자가용 또는 업무용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나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조직에서 정한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여유시간을 감안해서 출발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들 때문에 늦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한 번은 꽉 막히는 고가도로 중간에서 버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갈아탄 적도 있고, 한 번은 버스로 7분이면 되는 거리를 길이 너무 막혀서 택시 기사님이 골목골목 길을 꺾어서 겨우 시간 안에 도착한 적도 있었어요.


시간과 관련된 일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앞에 앉은 직장인 아저씨가 가방을 놓고 내리려 하길래 불러 세웠지만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계셔서 듣지 못했나 봐요. 저는 결국 카드 환승 태그도 하지 못한 채 가방을 들고 내려서 직장인 아저씨한테 전달해 준 적도 있었어요. 어쩔 때는 버스 정류장에서 노숙하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버스 뒷문 쪽에 앉아 있는 저를 보고 난데없이 고함을 지르며 쌍욕을 하시는 바람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 품에서 엉엉 울었던 적도 있고, 만원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친구의 몸을 더듬는 변태를 퇴치하느라 애를 먹었던 적도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지상 도로에서 애를 먹었다면 재수생 시절과 대학생 때는 지하철 1호선과 얽힌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1호선이라고 하면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요?


전동 열차를 타고 노량진 역에 내려서 학원을 다니던 시절... 


사람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려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내리는 타이밍을 놓치게 됐어요. 전동차 안으로 도로 밀려 들어왔는데, 이를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이 학생 내려야 해요!"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밖으로 밀어내셨어요. 그 모습은 마치 튜브 안에 알량하게 남아있는 치약을 짜내는 느낌이었달까요? 집 나간 정신을 차리고 감사인사를 하려 돌아섰지만 이미 멀어져 가는 열차를 한동안 바라보며 멀뚱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후신경을 치고 들어오는 생선 냄새 때문에 바로 정신이 번쩍 들긴 했지만요...


한 번은 평소와 다름없이 여유 시간을 두고서 출발했지만 지하철 연착이라는 변수를 생각 못한 거예요. 하필이면 앞에 가던 전동차의 문이 고장 나는 바람에 앞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제가 탄 전동차에 밀려 들어왔어요. 이미 열차 안에는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꽉 차 있었는데 더 많은 직장인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바람에 공중부양을 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키 165cm인 제가 힐을 신고 서있다가 더 높이 올라갔으니 열차 안 사람들의 웃통수가 그렇게 잘 보이더라고요. 


한참을 달려서 환승역에 갈 때까지 공중에 떠있었고 보기 좋게 지각한 저는 교수님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결석 처리가 됐답니다. 전동차 안에서 공중부양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얻은 대신에 학점 떨어지는 무서운 상상을 했어요.  


방학기간을 이용해 알바를 할 때도 1호선과 2호선을 주로 이용했던 기억이 안 좋아서, 인턴 생활부터는 다른 노선을 노렸어요. 그건 바로 7호선이었는데요. 지금보다 노선이 더 확장되기 전이어서 비교적 타고 다니기 나쁘지 않았지만, 7호선도 출퇴근 시간에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라인은 아니었어요.


신도림 못지않은 가산디지털단지 역과 고속버스터미널 역을 지날 때면 숨통이 조였다 풀리는 느낌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적이 많았어요. 심지어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었던 나머지 덩치 좋은 성인 남자가 발을 헛디뎌 허벅지가 끼는 사고를 눈앞에서 본 적도 있고, 급 화장실 신호가 와서 내렸다 탄 곳이 하필이면 숭실대입구 역이어서 지옥을 경험했어요. (숭실대입구 역은 전쟁 나면 방공호 역할을 하기 위해 지상에서부터 승강장까지 깊이가 상당하며 화장실은 중간 정도 깊이에 위치하고 있어요...) 


이용승객이 많은 시간대에는 전동차 안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이 기본 매너이기는 하지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을 때는 문이 열릴 때마다 숨통을 트기 위해 봉을 잡고 문 앞에 서있었던 적도 많았어요. 그래도 나름의 암묵적인 룰이자 매너를 지키려고 역에 설 때마다 내렸다 탔다를 반복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잠깐 하차를 한 사람이 도로 먼저 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상상 속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에요. 분명 저는 잠깐 내린 사람인데 다른 승객들한테 밀려서 다시 타질 못했고 결국 또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야 하는 일도 있었어요. 


출근길 도로와 대중교통은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기 때문에 잠깐 머뭇거리는 순간 자리를 뺏기기 십상이에요. 그래서 한 순간도 정신 놓지 말고 자기 살길 찾아 몸을 구겨 넣어야 재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만 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대중교통은 일부 사람들은 자가용이 있지만 아침 도로 사정 등의 이유 때문에 차선책이 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일 수도 있어요. 


이처럼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만 아침 시간대에 대중교통은 노선을 따지지 않고 혼돈의 카오스구나... 


우리 모두 아침마다 혼돈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구나 싶었어.... 


우리 모두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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