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H Mar 10. 2022

귀가 향기

꼭 즐겁지만은 않아

고등학생 때 왕복 통학 약 1시간

재수생 때 노량진에 있는 학원까지 왕복 약 1시간 ~ 1시간 반

대학생 때 왕복 통학 총 3시간 ~ 3시간 반 

직장인일 때 출퇴근 통합 약 2시간 ~ 2시간 반


진학과 공부 그리고 진로 모두 포기하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선택 때문에 대중교통에 속해 있는 시간들이 많았었어. 


목적지에 갈 때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정신을 못 차렸지만, 반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심리적인 압박이 덜해서 편하다고 느끼는 편이었어. 하지만 이런 건 어느 정도 체력이 남아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지, 치열한 하루를 보낸 다음 집으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면 까마득할 때가 대부분이었어.


버스는 출퇴근 이동거리가 짧을 때 이용하기 좋고, 지하철은 멀리 이동해야 할 때 좀 더 유리했어. 학교나 회사가 집과 가까운 곳에 있거나 출퇴근(혹은 등하교) 셔틀을 운영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덜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자리 차지를 하려고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돼.


우선 몸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플랫폼 의자에 앉아있기보다 스크린도어 바로 앞에서 대기한 다음 전동차 문이 열릴 때 깊숙이 들어가. 그리고 신속하게 내부 사정을 스캔한 다음 곧 내릴 거 같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해. 주변에 승객들이 가득 들어찼을 때는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야겠지만, 상대적으로 승객들이 덜 있는 경우 범위를 넓혀서 내 앞, 양옆 사람들을 스캔해서 곧 내릴 사람이 있는지 파악해 주는 것이 좋아. 이때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좋지만,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야.


사무실에 앉아만 있던 사람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앉을자리 찾냐고 뭐라고 할 수도 있어. 그런데 '힘듦'은 절대적인 수치로 따져볼 수 없는 문제니까... 서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쪽을 택하게 되더라. 


물론 겨울에는 외투 때문에 다른 계절들과 전략을 달리 하는 것이 좋아. 두꺼운 점퍼를 입은 사람들끼리 앉으면 누군가는 엉덩이만 살짝 걸쳐 앉게 되더라고. 그래서 크게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외투 종류와 상관없이 앉아도 무방하지만, 좀 더 편안한 자리를 원한다면 코트를 입은 사람 사이 또는 옆에 앉는 것이 좋아. 그래야만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상황이 되더라도 엉덩이는 의자 깊숙이 붙여 앉을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편해. 


시간대가 어떻든지 간에 바로 퇴근(또는 하교)을 하는 경우라면 전략에 따라 의자에 앉는 쪽을 선택하려 할 거야. 그런데 회식이라도 한 날에는 온갖 냄새들이 뒤섞이는 바람에 자리에 앉는 것을 포기할 때가 있었어. 술과 함께 고기를 신명 나게 구웠다거나, 주점, 심지어 흡연자 옆에 있었던 경우(또는 본인이 흡연자) 온갖 종류의 냄새를 달고 타기 때문에 전동차 문이 열리는 쪽 반대로 가서 봉을 잡고 서있어. 만약 내가 야근 후 퇴근한 사람이라면 다른 승객의 진한 퇴근의 향기를 맡게 되는 거고, 나도 회식을 하고 귀가하는 경우에는 온갖 냄새들이 체내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토하고 싶은 위기의 순간이 몇 번씩 찾아와. 이처럼 아침과 달리 집으로 가는 길은 심적으로 불안감이 덜하지만 퇴근의 향기 때문에 그날 하루 겪었던 일상의 냄새가 섞여서 마냥 좋지만은 않아. 굳이... 쓸데없이 비교해보면 다들 아침에는 집에서 바디 제품으로 씻은 후에 올라타기 때문에 퇴근보다는 더 향기롭지 않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 많아져. 


그렇게 지하철만 타면 좋으련만, 버스로 환승까지 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지쳐.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오는 버스를 타면 좋겠지만 그런 운은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야.... 퇴근하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 춤추는 손잡이를 움켜 잡고 있을 때는, 이 팔이 내 팔이 맞는지 움켜쥐고 있는 이 손은 내 손이 맞는지 헷갈려. 정신도 몸도 감각이 최상급으로 무뎌져서 무(無)로 돌아간 느낌이야. 어쩌다 가끔씩 아침 일찍 출근할 때 만난 이름 모를 동네 주민을 밤늦게 지하철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날 때가 있어. 서로 통성명을 한 적도 없고 대화조차 한 번 한적 없는데 상대를 향한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해. 


'저 사람은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할 만큼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사는구나...'


이처럼 대중교통이 정말 고마운 이동수단인데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출퇴근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상황이 열악한 경우가 많아. 때에 따라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기는 하지만..... 여러 형태의 사람 냄새도 나서 그런지 마냥 싫지만은 않아. (와... 싫다 그랬다가 힘들다 그랬다가...  변탠가?)


애증의 대중교통, 그리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퇴근길...





이전 20화 아침마다 일어나는 전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