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의 향기

정상적인 호흡이 어렵습니다

by 에밀리H

고등학생 때 왕복 통학 약 1시간

재수생 때 노량진에 있는 학원까지 왕복 약 1시간 ~ 1시간 반

대학생 때 왕복 통학 총 3시간 ~ 3시간 반

직장인일 때 출퇴근 통합 약 2시간 ~ 2시간 반


저는 진학과 공부 그리고 진로 모두 포기하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선택 때문에 대중교통에 속해 있는 시간들이 많았었어요.


목적지에 갈 때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정신을 못 차렸지만, 반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심리적인 압박이 덜해서 편하다고 느끼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건 어느 정도 체력이 남아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지, 치열한 하루를 보낸 다음 집으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면 까마득할 때가 대부분이었답니다.


버스는 출퇴근 이동거리가 짧을 때 이용하기 좋고, 지하철은 멀리 이동해야 할 때 좀 더 유리했어요. 학교나 회사가 집과 가까운 곳에 있거나 출퇴근(혹은 등하교) 셔틀을 운영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덜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자리 차지를 하려고 눈치게임이 시작돼요.


가장 먼저 웜업으로 하는 행동은 몸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플랫폼 의자에 앉아있기보다 스크린도어 바로 앞에서 대기한 다음 전동차 문이 열릴 때 안쪽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신속하게 내부 사정을 스캔한 다음 곧 내릴 거 같은 사람 앞에 서요. 주변에 승객들이 가득 들어찼을 때는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야겠지만, 상대적으로 승객들이 덜 있는 경우 범위를 넓혀서 내 앞, 양옆 사람들을 스캔해서 곧 내릴 사람이 있는지 수시로 파악해 주게 됩니다. 이때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좋지만, 창문에 비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해요.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만 있던 사람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앉을자리 찾냐고 뭐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힘듦'은 상대적이지 절대적인 수치로 따져볼 수 없는 문제니까 서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쪽을 택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물론 겨울에는 외투 때문에 다른 계절들과 전략을 달리 하는 것이 좋아요. 두꺼운 점퍼를 입은 사람들끼리 앉으면 누군가는 엉덩이만 살짝 걸쳐 앉게 되기 때문인데요. 만약 외투로 인한 불편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상관없겠지만, 좀 더 편안한 자리를 원한다면 코트를 입은 사람 사이 또는 옆에 앉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만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상황이 되더라도 엉덩이는 의자 깊숙이 붙여 앉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시간대가 어떻든지 간에 바로 퇴근(또는 하교)을 하는 경우라면 전략에 따라 의자에 앉는 쪽을 선택하려 해요. 그런데 회식이라도 한 날에는 온갖 냄새들이 뒤섞이는 바람에 자리에 앉는 것을 포기할 때가 있어요. 술과 함께 고기를 신명 나게 구웠다거나, 주점, 심지어 흡연자 옆에 있었던 경우(또는 본인이 흡연자) 온갖 종류의 냄새를 달고 타기 때문에 전동차 문이 열리는 쪽 반대로 가서 봉을 잡고 서있어요. 만약 나 자신이 야근 후 퇴근한 사람이라면 다른 승객의 진한 퇴근의 향기를 맡게 되고, 반대로 회식을 하고 귀가하는 경우에는 온갖 냄새들이 체내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토하고 싶은 위기의 순간이 몇 번씩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이처럼 아침과 달리 집으로 가는 길은 심적으로 불안감이 덜하지만 퇴근의 향기 때문에 그날 하루 겪었던 일상의 냄새가 섞여서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괜히 비교해서 말해보면, 다들 아침에는 집에서 바디 제품으로 씻은 후에 올라타기 때문에 퇴근보다는 더 향기롭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갖가지의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 지하철만 타면 좋으련만, 버스로 환승까지 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지칠 수밖에 없어요.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오는 버스를 타면 좋겠지만 그런 운은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 멋대로 춤추는 손잡이를 움켜 잡고 있을 때는, 이 팔이 내 팔이 맞는지 움켜쥐고 있는 이 손은 내 손이 맞는지 헷갈려요. 정신도 몸도 감각이 최상급으로 무뎌져서 무(無)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어쩌다 아침 일찍 출근할 때 만난 이름 모를 동네 주민을 밤늦게 지하철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날 때면 서로 통성명을 한 적도 없고 대화조차 한 번 한적 없는데 상대를 향한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해요.


'저 사람도 나처럼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할 만큼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사는구나...'


이처럼 대중교통이 정말 고마운 이동수단인데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출퇴근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상황이 열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기는 하지만, 여러 형태의 사람 냄새도 나서 그런지 마냥 싫지만은 않아요. (와... 싫다 그랬다가 싫지 않다 그러고... 변탠가?)


온갖 사람 냄새를 풍기는 대중교통, 그리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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