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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공장에서 일하면 힘들지 않나요?

공장 덥겠다

by 에밀리
스크린샷 2025-06-17 오전 11.15.02.png 기숙사 근처


태국 공장에서 일한다 하면 다들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공장 일 하면 덥지 않아?”
“기계 돌아가니까 무조건 찜통 아니야?”


아마도 무한히 돌아가는 기계들과 땀범벅된 노동자들 이미지 때문일 거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일하는 오피스는 추워도 너무 춥다. 에어컨이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이랄까. 하루는 겉옷을 안 들고 간 날이었는데,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고 있던 나를 본 상사님이 슬쩍 다른 분에게 옷을 빌려 입혀주었다.


진짜 더운 곳은 당연하지만 공장 생산라인 내부다.

내가 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생산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인데,

기계 옆에서 찍히는 데이터를 확인하려면 자주 나가야 한다.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온몸에 후끈한 공기가 달라붙는다.


사무실이랑 온도 차이가 심해서, 겉옷을 입은 채로 나갔다가 결국 허리에 묶고 돌아다니며 후회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데이터를 정리하고 코드를 짜는 일은 사무실에서 한다.

그러니까 내 하루는 덥고 추운 걸 오가며 이어지는 셈이다.


공장 안에서도 생산라인마다 각각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종이를 자르고 이어붙여 박스를 만드는 Cardboard 공장은, 놀랍게도 상대적으로 시원하다. 에어컨을 별도로 트는 것도 아닌데, 뭔가 넓고 환기 잘 되는 구조 덕인지 그곳만 들어가면 ‘어라, 괜찮은데?’ 싶다.

그래서인지 카드보드 박스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분들은 대체로 여성이다.


반면, 알루미늄을 녹이는 라인이나 철을 찍어내 제품을 만드는 라인은 기계 열기와 함께 공기의 무게부터가 다르다.


"그럼 기숙사 생활은 힘들지 않아?"


의외로, 기숙사가 좋다. 정확히는 기숙사가 아닌 ‘콘도’였다. 부엌도 있고, 거실도 있고, 발코니도 있고 방엔 침대가 두 개나 있다. 처음엔 ‘기숙사니까 그냥 대충 자고 씻고 나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퇴근 후 콘도로 돌아가는 시간이 꽤 기다려진다.


누가 태국 공장 간다 하면, 다들 "덥겠다", "힘들겠다" 라고 말하지만 나는 "추워서 감기 조심해야 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보이는 발코니 일몰은 정말 볼만 하다고.


사람들이 예상하는 풍경과 내가 마주한 현실 사이엔 꽤 큰 간극이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분명 낯선 곳인데,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내 몸이 느끼는 온도처럼, 마음도 왔다 갔다 한다.


시원했다가, 더웠다가,
고단했다가, 또 웃음이 났다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에어컨 바람을 막아줄 겉옷을 챙겨 공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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