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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공장에서 머신러닝을 돌리는 여자

단순반복 공장에서 자동화하기

by 에밀리
시급 2천 원 받는 스물 두살 인턴에게, 부장님은 자동화를 물어왔다.


태국 공장에 입사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햇볕은 뿌옇게 필터를 낀 듯 천장을 타고 퍼졌고, 나는 부장님의 호출을 받아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날의 공기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지만, 부장님은 묘하게 들뜬 눈빛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파일을 뒤적이던 부장님은, 문득 나를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는 자동화에 관심이 있나?”


처음에는 단순한 업무 브리핑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날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된, 그러면서도 끈질긴 싸움에 가까웠다. 그는 올해로 이 공장에서 36년째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 공장의 작업자 수는 지금보다 많았고, 모든 생산 기록은 노트에 손으로 써 내려가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공정 데이터를 손으로 적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천 장의 종이, 서로 다른 필체, 흐릿한 잉크. 작업 중간에 스펙이 변경되거나 납기 일정이 달라져도, 그걸 찾아보려면 수백 개의 노트를 일일이 뒤적여야 했다. 클라이언트가 진행 상황을 묻기라도 하면, 수백개의 노트를 확인하거나, 경험을 총동원해 '아마도 이때쯤'이라 짐작하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누군가는 손으로 쓰는 게 정겹다 했고, 누군가는 손때 묻은 기록이 더 믿을 만하다 말했지만, 부장님은 그런 낭만을 믿지 않았다. 숫자와 시간 앞에서는 정확함이 전부라고 그는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손글씨 대신 디지털을, 노트 대신 컴퓨터를 쓰는 세상을 이 공장에 들여오겠다고. 그렇게 그는 MIS팀의 문을 두드렸다. 회사 내 유일한 프로그래머가 속한 팀이었다. 부장님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우리 현장에 맞는 시스템 하나만 짜줄 수 있겠나. 노트 대신 쓸 수 있도록.”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단칼이었다.


“6개월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미 수십 개의 요청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손이 이 공장 현장까지 닿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부장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 이후 공장 안을 빙빙 돌며 현장의 흐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마치 전쟁터의 사령관처럼, 기회가 올 때까지 모든 변수를 머릿속에 넣어두었다고.


부장님은 결국,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단단한 얼굴로 회장의 문을 두드렸다. 직접 나서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저희 부서에 전담 개발자를 한 명만 두게 해주십시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회장은 한동안 묵묵히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고 한다.


“좋습니다. 단, 3개월 안에 성과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부장님에게는 딱 석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바로 사람을 뽑고, 일을 시작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러나 그가 확신하던 변화는 그렇게 웹사이트 한 줄의 코드로부터 시작되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은 땀 묻은 손으로 볼펜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 노트도, 번진 잉크도, 어디에 꽂혔는지 알 수 없는 서류철도 사라졌다.


이전에는 생산현황 하나만 확인하려 해도,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다녀야 했다. 한 손에는 클립보드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노트를 넘기며 작업자의 메모를 읽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웹페이지 하나면 충분했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현재 공정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고, 분석도 가능했다. 그렇게 이 공장은, 태국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생산 데이터를 서버에 쌓기 시작한 몇 안 되는 공장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스템 위에서, 부장님은 또 하나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바로, 내게 처음 맡겨진 일이었다. 지금까지 축적된 수천 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 요구사항을 입력하면 소요 시간을 예측하는 시스템. 나는 머신러닝을 써야 했다. 데이터를 회귀 분석하고, 모델을 학습시키고, 실제 공정과의 오차를 줄이는 일. 부장님은 내게 말했다, 기록만 잘된 공장이 아니라, 예측이 되는 공장으로 만들어보자고.


이 공장에서의 첫 번째 과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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