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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Aug 16. 2020

버리는 자와 지키는 자

지쳐만가는 내마음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이사할 때마다 엄마와는 늘 언쟁이 생긴다.

이제 불필요한 것들, 생을 다한 것들을 미련없이 버리는 나와 조금이라도 쓸 것 같아 보이는 것을 열심히 챙기는 엄마.


그동안은 투덜거리고 엄마에게 뭐라고 하면서도 그 모든 물건을 다 살뜰히 챙겨 어딘가에 잘 넣어두었다. 엄마는 이렇게 대량의 짐을 정리하고 배치하려면 멘붕이 먼저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다음 청소 혹은 다음 이사할 때까지 그자리를 지킬 것이 뻔하고 진짜 지키게 되더라도.


이번엔 그러기가 싫었다.

새집에 언제 쓰게될지 모르는 플라스틱 병이나 십년간 한 번도 꺼내입지 않은 옷이나 몇년간 쓰지 않는 이불따위를 두고 싶지 않았다. 엄마도 왠지 그러기는 싫었는지 정말 쓸 것들, 정말 손이 가는 것들만 추려서 짐을 싸서 보냈다. 그리고 내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남은 것들도 잘 버려보겠다고 했다.


아. 그말을 믿어서는 안됐다.

오늘도 어김없는 폭우에 이삿짐 내리고 올라오는 시간은 늦어졌는데 해가진 후에도 끝도 없이 짐이 올라왔다. 엄마말로는 버리려던 것도 그분들이 싸서 가져왔다고 했다. 상표 붙은 유리병까지도. 그러지 말라고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당일 가서 지켜보라는 건데 대체 어떤 일을 하고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한 번 전쟁을 치르고 온 후라 더이상 신경전과 언쟁을 할 힘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은 삐뚤어질대로 삐뚤어져버렸다. 내 주특기가 엄마와의 밀당인데 오늘은 그것도 할 수가 없어서 심술을 있는대로 부렸다.


입은 꾹 다물고, 엄마가 가져온 것들은 잘 넣어주고 엄마 보란 듯이 내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나눠버렸다. 엄마덕에 이렇게 쓸만한 것들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고. 사소한 미련이 남아 애써 살아남은 것들과 가차없이 이별을 선언하고 망설일 틈없이 집밖으로 보내버렸다.


입에서 나온 말은 무조건 실행하고, 생각은 많지만 정해지면 직진하는 날 아는 엄마는 그제서야 이렇게 뭐가 많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래도 뭐 달라질 것은 없다. 여전히 엄마가 버릴 수 없어 가져온 물건은 넘치고, 그럴 것이었다면 집을 좁혀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저녁먹으면서 결국 한마디했다.


엄마 물건에 집착 좀 버려줘

엄마, 양손에 물건을 쥐고 하나 더 가지고 있겠다고 끌어안지 말라고. 기껏해야 하찮은 물건들이라고. 십년째 처박혀있던 돗자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서 끌어안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라고.


물론 엄마는 절대 집착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걸 다 끌어안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엄마도 자기 물건 마음껏 끌어안을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할 듯하여 이집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했다. 원하는대로 하시라고.


내일은 이모가 와서 엄마를 돕는다는데 개 두마리 데리고 강화집에 가서 여기서 가져가야할 짐이나 정리하면서 혼술이나 할까, 어쩔까 고민 중이다. 아님 그나마 없는 옷장을 더 털어내 볼까.


도망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나도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나도 술친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 두 개가 한 번에 오긴 어려운 일인데 오늘이 딱!그날이다. 딸린 개만 아니면 어디 먼 곳으로 가버리고 싶기도 하다. (ㅠㅡㅜ)



이게 다 비때문이라고 되도 않는 남탓을 해보는 이사전쟁의 패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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