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과 완벽 사이
인생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독한 패배감을 가져온다. 귀에 들어오는 중국어를 60%만 이해하고 생각 중 20%만 말로 전달할 수 있었다. 언어를 익힐 때 좌절은 친구가 된다. 좌절은 삶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갋아먹는다. 하루 치에 압박감은 양이 정해져 있어서 임계점을 초과하는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패닉의 늪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감당할 수 없는 곳까지 밀어붙이려고 하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져서 사라지고 싶을까 봐 두려웠다.
스윙댄스를 배우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수업 중에 유독 배우기 어려운 동작에 버벅대었다. 남자 친구 헨리는 모든 동작을 알아듣고 곧잘 추었다. 반면 나는 수업 동료가 빠르게 말하는 중국어를 알아듣는 척하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헨리는 동료들과 말을 핑퐁처럼 주고받으며 호쾌하게 웃었다. 우울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가는 나를 보며 헨리는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반복된 좌절이 축적되어 나는 타인에게 내 고통을 말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목이 메었다.
헨리는 종종 초라한 나를 아무것도 모르고 한계의 끝으로 몰아내는 사람이었다. 일과 생활 모든 게 순조로운 헨리처럼 나도 가볍게 일상의 업무와 의무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실은 나에겐 분투이고 도전임을 헨리는 모른다. 태연스럽고 평화롭게 보이고 싶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하루에 만나는 사람 수를 조절하고 약속은 내가 익숙한 장소로 정한다.
헨리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캐나다에 이민 갔을 때 영어와 프랑스 발음이 현지인처럼 들리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인지 헨리는 한국어를 배울 때에도 항상 완벽을 목표로 공부했다. 목표에 다다르기 어렵다 해도 대충이 없었다. 손톱은 항상 아주 짧게 깎여 있고, 다이어리는 깔끔하게 플랜이 짜여있다. 글씨가 놓이는 것은 모눈종이를 대고 쓴 것처럼 행과 열이 십자가로 만나는 곳이다.
나는 해낼 수 있는 몫의 삶만 선택한다. 언어를 배우거나 일을 할 때 삶을 영위해갈 때도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어설프고 불완전한 행동이 모여 나를 구성하게 되었다. 나는 종종 발견되는 대만 사람들의 어설픔에 안심했다. 이상한 기차 시스템 덕분에 기차표를 사지 못하거나 직장 동료가 늦게 이메일을 답변하는 것을 보면서 불만을 토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대만 사람들이 불완전한 나를 용이해줄 것이라 믿었고 그럼에도 나의 불완전함을 알아챌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습관은 결국은 나를 조금씩 녹슬게 만들고 파괴하고 있다. 점점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었다.
헨리가 캐나다 명문대를 자퇴하고 대만으로 간 이유
헨리가 어느 날 밤톨처럼 짧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타났다. 머리카락이 일주일마다 쑥쑥 자라나자 헨리는 바버샵에서 쓰일 만한 전용 커팅 도구를 샀다. 바버샵에 가서 매번 3만 원을 내고 이발해야 되는데 머리는 너무 빨리 자랐다. 헨리는 이제 조금 길렀다 싶으면 스스로 머리카락을 깎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헨리는 일주일에 3번 빵을 만든다. 주식으로 먹어도 되는 담백한 프랑스 빵이다. 빵을 두 개 만들면 이틀 동안 가족들은 아침 식사로 빵을 즐긴다. 경제적이고 전문 빵집보다 맛있으며, 믿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다.
헨리의 창업 스토리는 참 특이하다. 어렸을 때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민을 갔다. 성인이 돼서는 캐나다의 명문 대학교를 입학했다. 어느 날 이미 대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다니고 있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직장 생활에 대해 푸념했고, 헨리는 그 사람처럼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고 한다. 고용자의 궁극적인 단점. 회사에서는 때때로 혹은 대부분은 선택이 자유롭지 않다. 이 단점은 직장을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고, 경도가 달라질 뿐이다. 삶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무기력증을 느낀다. 우등생인 헨리는 대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인 대만으로 돌아오기로 한다.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캐나다보다는 대만이 사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가족들이 헨리의 결정을 지지했고, 헨리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아들의 대학 자퇴를 자랑했다고 한다.
“평범한 길을 따라가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내 아들은 난 놈이야! ”
헨리는 자퇴를 하고 대만에서 창업을 한다는 결정. 나는 그때 헨리는 삶의 방향을 진취적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헨리는 한 동안 캐나다를 다시 가지 않았다. 자신이 목표한 일은 해내고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타이베이에 페스트리 샵을 열었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직원 없이 새벽까지 일했고, 집과 가게만 오고 가며 매진했다. 3년이 지나자 가게는 안정되었고 헨리가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가게는 잘 운영되고 있다. 이제는 셰프와 직원들이 가게를 돌본다. 헨리는 캐시카우가 있어 정말 하고 싶은 아이템으로 두 번째 창업을 하고 있다.
헨리는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의 베스트 맨을 하기 위해 3년 만에 캐나다를 방문했다. 친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친구들은 자퇴 결정을 반대했는데 아마 친구들은 아래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을 했다.
*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일,
* 친구들이 있는 캐나다에서 정착
헨리는 사실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은 비교적 쉽다고 한다. 자유롭고 자신이 온전하게 소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저 뻔한 길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것을 뚝딱뚝딱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렵지만 인생은 오직 한 번이니, 그럼 어려운 길로 가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평일 하루 8시간 이상을 동료들의 안색을 살핀다.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고 설득도 필요하다. 보고 내용이 상사 마음에 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한다. 밀려드는 업무를 해내기 바쁘며 나이스 한 동료가 되기 위한 매일 분투하고 있다.
헨리는 타인이 하는 말은 Don’t give a sh*t 하라고 조언한다. 헨리의 조언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외부의 피드백과 칭찬을 동력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헨리는 머리를 가볍게 자르고 빵을 직접 만들며 자기 사업을 만들어간다. 헨리는 온전한 의지로 자신의 우주에 살고 있다. 짧은 인생을 보다 멋지게 살기 위해서.
대만의 스타트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하고 몇 달 동안은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잠을 자기만 했다. 회사에서 한국 시장 유일한 담당자였고 브랜드 아이덴티티 수립, 광고 전략, Own media 운영, SEO, SEM, KOL, 웹/앱 로컬라이징, 각 부서 커뮤니케이션 등 A부터 Z까지 해야 했다. 과중된 업무와 압박감에 나는 자주 8시~9시까지 야근을 했다. 주말에는 월요일이 오는 게 두려워 현실을 피하기 위해 잠으로 파고들었다. 주말에 일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건 고약이었다.
해외 취업에 성공하면 행복할까. 이방인으로서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일반 현지인보다 자신의 존재를 더 뚜렷하게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외국인인 나는 회사 내의 평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언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회사 내부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현실을 피하기 위해 여행으로 도피하고 싶기도 했다. 스카이스캐너에서 everywhere를 검색하며 숨어들 쥐구멍을 찾아보았다. 다음 주 싱가포르로 떠나는 23만 원을 티켓값을 결제하려다 정신을 차리고 스카이스캐너 화면을 꺼버리기도 했다.
번아웃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근무시간 8시간을 지켜 퇴근하기 시작했다. 유연 근무제이기 때문에 일찍 출근을 한 경우 늦게 온 직원들보다 1~2시간 이상 빠르게 회사를 떠날 수 있었다. 일의 우선순위를 나누고 일을 도와줄 직원 고용을 회사에 요청했다. 필요하더라도 우선순위가 낮은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조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행복을 지키고 커리어 성장을 시켜준 것은 해외 취업이라는 조건보다는 내 안에 중심을 잡고 일하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