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ma Jeon Oct 24. 2021

10. Oh, Kelly




켈리(Kelly)는 야무지고 똑똑한 그녀는 캐세이퍼시픽에서 근무하는 스튜어디스다.  유창한 영어실력의 그녀는 타인에게 따스한 미소와 침착함 여유로움을 주는 멋진 사람이다.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는데, 꼼꼼하고 원칙적이며 부지런한 그녀의 모습이 딱 묻어 나오는 전공이었다.


켈리와 함께 위산(玉山)을 오르며  처음으로 대만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 그날 대화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켈리는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를 향해 몇 퍼센트 달성했는지 따져가며 이뤄내며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며 목표를 이루도록 자신을 푸시하는 사람들을 곁에 둔다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고 남자 친구가 그러했다. 남자 친구 브루스는 내 친구이기도 했는데 무심한 듯 옆에 사람들을 챙기는 스타일이며 여러 계획을 세워두고 실현시켜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켈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그녀가 무뚝뚝해 보이는 브루스와 사귀는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켈리는 브루스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다.


둘은 사진을 찍어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사람들을 깨우고,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성격은 켈리보다는 브루스가 한 수위인 것 같았는데 그래서 켈리가 브루스를 좋아하는 듯했다. 예를 들면,  화렌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기차에 켈리가 가방을 두고 내렸다. 브루스는 민망해하는 켈리에게 나무람이나 짜증 없이 무표정으로 기차 대합실에 들어가 직원을 찾았다. 켈리는 자신이 물건을 자주 두고 내려 이제 브루스가 이런 상황에 적응했다며 설명을 더했다.


우리는 화롄에 캠핑을 했고 늦은 밤에 바다로 별을 보러 갔다. 어마어마한 별들이 쏟아졌는데 그런 낭만적인 바닷가에서 캘리와 브루스 커플은 손 한 번을 잡지 않고 상대방 옆에 서서 별을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홍콩에서 살고, 비행기 위에서 일하는 켈리는 타이베이에 자주 오지 못했다. 그래서 3개월 만에 브루스의 집에서 열린 하우스 파티에서 켈리를 봤을 때 그녀가 임신했을 것이라고 추호도 믿지 못했다.  켈리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동그래진 배를 안고 "엠마~ 나 임신했어~"라고 말할 때  나는 켈리가 옷 속에 풍선이나 공을 넣어서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장난치지 말라며 켈리의 배를 치려고 할 정도였다. 켈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표정은 장난스러움에서 이상함, 놀라움, 미안함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었다.


"真的啊“(진짜야)  


나는 그녀를 꽉 안으며 축하한다.  당혹스러움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켈리가 먼저 설명하도록 옆에서 기다렸다.  켈리가 먼저 남자아이라며 말을 꺼낸다.  켈리가 말하기 전까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예의 상 물어야 한다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시청에 가서 부부 신고를 했다는 것, 벌써 9 달이며 곧 얘기가 나올 것이라 했다. 놀랍게도 6개월까지는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켈리의 배는 9개월 치고는 작았다. 하지만 정말 단단해 보였다. 켈리는 우리 두 명이 모두 키가 작아서 아기도 작다면서 사랑스럽게 말한다.


식사 자리에서 때로는 무례하거나 무지한 질문이 오고 갔는데, 그녀는 화내거나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종일 안정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회사를 쉬게 되고, 결혼식도 없이 브루스와 부부 사이가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도 없고 감히 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냐는 브루스 동창들의 질문에, ‘애 가진 것은 좋은 일이다… 근데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반응이었다며 켈리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답했다. 임신한 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대답을 이어가고 있는 켈리의 모습이 안쓰럽고 낯설다.


위산(玉山)에서 자신이 계획과 목표를 세워 달성해나가기도 하지만 아주 빨리 결정을 내리고 찬찬히 생각해나간다는 그녀의 말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음 시간에서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결혼식을 할 거냐고 물어봤고 켈리는 양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결혼식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안 할 것이라며 가볍게 말했다. 면사포를 만들어 하얀 원피스를 입고 친구들과 기념사진은 찍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나는 브루스를 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장난꾸러기가 되어 그를 쳐다봤다. 브루스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가 때리는 주먹을  그냥 어깨로 받아냈다. 내 웃음과 함께 그를 장난스럽게 친 것은 모두 ‘속도위반’ 또는 피임을 안 하고 사고를 친 이놈아 라는 뉘앙스와 네놈이 아빠가 되었구나 라는 복합적인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하는 肉

지인이 인생에서 잠시 방향을 잃었을 때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친구에게 너는 괜찮을 것이며, 이 고난은 별 거 아니라고 위로를 해줄 뿐이다. 켈리는 아기를 낳아 홍콩에 있는 직장을 쉬게 되었고 대만에서 머물 곳이 필요해 브루스의 여동생 두 명과 부모가 사는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아기를 낳은 후에도 켈리는 외유내강이었다. 켈리는 애써 씩씩한 척 노력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켈리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켈리의 기분을 추측하고 가끔 숨기지 못해 튀어나오는 진심을 들으며 진심을 확인할 뿐이었다.


"아기를 낳은 후에는 삶을 되돌릴 수 없어(沒有後退).  아기는 좋든 싫든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하는 肉로 느껴져"


** 켈리는 브루스와 이혼하고 홍콩으로 돌아갔다.  스튜어디스를 그만둔 켈리는 파이낸스 컨설턴트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


이전 09화 9. 나에게 애정의 눈빛을 보내는 곳으로 발을 뻗는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