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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Aug 14. 2019

결혼했지만, 독립하고 싶습니다.

정서적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ㅡ

결혼 전, 30살까지 나의 통금시간은 12시였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통금이 있는거냐'라며 반항을 해볼 법도 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 체질인지라 반항을 꿈꾸지 않았고, 어릴 적 꽃피우지 못한 반항심은 아이를 둘이나 낳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발현되었다. 왜 나의 통금 시간을 '조율'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독립'을 꿈꾸지 못하였는지 나의 청춘을 꾸짖고 싶다. 그 때는 독립에 드는 경제적인 비용만 고려대상이었고, 정서적 독립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다소 보수적 성향의 집에서 커온 지라, 결혼 후 4년 동안의 독립생활을 말그대로 달콤했다. 늦게 들어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고, 밤 늦게 과자를 먹어도 치우지 않아도 되었고, 새벽까지 티비를 봐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둘째가 생기며 나는 다시 친정과 합가를 시작했고 잠깐의 독립을 맛보아서인지 나의 독립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최근 나는 나의 '독립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아직도 내가 엄마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몸만 큰 어른이며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독립만 외치고 있는 철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 쯤 전의 일이다. 큰 아이가 아팠고, 유치원 등원시키기 전 병원에 들러서 진찰을 보고 유치원을 보내기로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30분, 병원에서 유치원까지 30분, 총 1시간에 이르는 아이에게 다소 무리일수도 있는 코스였다. 게다가 푹푹 찌는 날씨에 8개월 둘째까지 있어 유모차를 끌고 가야하니 출발하기 전부터 화가 나 있었다. 친정엄마가 같이 가자거나, 둘째를 놓고 가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는 내내, 더운 날씨와 친정엄마가 도와주지 않음에 짜증이 났고, 그 화는 결국 고스란히 첫째에게 전가되었다. 목마르다는 아이를 겨우 어르고 달래 도착한 유치원에서 잘 다녀오라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손에서 아이의 땀이 흥건이 묻어 나왔다. 아이는 엄마의 짜증을 묵묵히 받아내고 1시간을 순순히 따라온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이 아이에게 이유없는 짜증을 마구 부린 것인지 한심하고 또 한심했다. 결국 내가 낸 화로 인해 아이가 받은 상처도 내가 책임져야하는 것인데....그 순간 깨달았다. 


유치원에 가야 하는 첫째, 같이 데리고 가야하는 둘째. 모두 내 아이이고, 그러니 내가 책임져야 되는게 너무나 당연한 건데, 왜 엄마에게 도와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는거지?


엄마는 내 엄마일 뿐, 우리 아이들을 반드시 돌봐줘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합가를 했다고 해서 엄마가 반드시 육아에 도움을 줘야하는 것이 아닌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조금씩 의지하고, 의지의 범위를 넓혀 가고, 그렇게 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화가 났던 것이다. (알고 보니 엄마가 당시 같이 가주지 못하셨던 이유는 매트리스 케어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화내지 않았을텐데, 자신이 더 한심스러웠다. 엄마가 '안' 가준게 아니라, '못' 가준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을 꿈꾸고 있으면서 아직 정서적으로도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친정엄마가 어떤 이유로 육아를 도와주지 못할 때, 속으로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내 아이들이다.'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고, 나 스스로도 내 힘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독립심을 키우는 문구였다. 그 문장을 되뇌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엄마에 대한 서운함은 조금씩 줄어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독립심은 느리지만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합가는 했지만, 우리 부부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엄마의 도움을 받자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며 소신이다. 물론 가끔 주말 늦은 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후 부부의 데이트를 위해 잠시 외출을 감행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주말 부부에서 오는 외로움, 육아의 고단함, 막중한 책임감과 엄마로서의 죄책감의 화살을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돌리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의 무게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정서적 독립으로 가는 나의 첫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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