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는 위험해

평범하다고 믿었던 주말

by Emmett

긴 명절이 지나고 한티, 버티와 아기 고양이의 합사 또한 별 탈 없이 지났다. 아기 고양이가 어딜 가든 버티가 따라다녔고, 아기 고양이는 그런 버티를 엄마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듯 무척이나 잘 따라 주었다. 특히나 삼색이인 아기 고양이인데 반해, 턱시도를 입고 있는 버티가 항상 따라다니니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꼬마아가씨 같기도 했다. 한티는 아기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잘 때만큼은 아기 고양이에게 품을 내주는 든든한 아저씨 역할이랄까.


아기 고양이에겐 이윽고 '로티'라는 이름이 생겼는데, 꼬리가 너구리 같아 어떤 캐릭터의 이름으로 지어주게 되었다. 마침 또 티자 돌림이 아닌가! 그렇다. 로티는 임보가 아닌 한티, 버티의 보호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연스럽게 우리 집의 셋째로 거듭나게 되었다.


IMG_0351.JPG 꼬마 아가씨와 멋진 경호원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의 루틴이라 한다면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에 넣어두고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한 뒤 빨래가 끝날 때까지 침대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빨랫감을 모아서 바로 세탁을 하지 않았던 건 청소하다가 미처 세탁기에 들어가지 못한 빨랫감이 발견될 때, 빨래 중엔 잠겨있어 다시 넣기 어려운 드럼세탁기이기 때문이었다.


아침 열한 시, 느지막이 침대에서 벗어나 주말의 루틴을 시작했다. 빨랫감을 모으러 다닐 때면 한티와 버티는 졸졸 쫓아다니곤 했는데 이젠 로티까지 그 작은 몸으로 쫓아다녔다. 물론 청소기를 돌릴 땐 모두 도망갔지만. 아직 로티는 청소기 교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늘은 늘 하던 루틴에서 벗어나 청소기를 마지막에 돌리기로 했다.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에 넣어 바로 빨래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하고서 청소기를 들었다. 이제 한티, 버티, 로티가 모두 도망가는 순서이다. 한티와 버티는 재빨리 캣타워 위로 도망갔고, 로티는 이제 청소기 교육을 해야 하는데, 로티가 없다.


청소기를 켜자마자 버티를 쫓아 같이 캣타워에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해야 하는 로티가 없다. 설거지로 인해 덜 마른 손을 옷에 대충 닦고서 로티가 벌써 도망가서 숨어있는 건지 집안을 샅샅이 살폈다. 세탁기의 물 받는 소리가 끝나고 이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을 살펴봤지만 화장실에도, 변기뒤에도, 옷장에도, 이불속에도 어디에도 로티가 없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로티를 부르며 그렇게 몇 분이고 온 집안을 다시 뒤졌다. 설마, 현관 밖으로 나간 걸까? 기억을 되짚어봐도 오늘 현관을 연 적이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로티는 언제부터 눈에 띄지 않은 건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오늘 느지막이 일어나 바로 주말 루틴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이젠 떨리는 목소리도 아니고 울며 모든 서랍을 꺼내고, 옷을 꺼내고, 물건들을 꺼냈다. 아무리 찾아도 로티가 없어서 한티와 버티까지 불러 로티가 어디 갔는지 아냐며 묻기까지 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고양이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넋이 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기억을 되짚었다. 마지막으로 로티를 봤던 게 어디였던가. 설마 내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없어진 건가. 어젯밤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고요한 집 안에 세탁기 소리만 들리는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말고도 무언가가 세탁기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생각에 채 일어나지도 못한 나는 세탁기 앞으로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세탁기 안을 들여다보니 세탁기 문을 짚고서 돌아가는 세탁기를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로티가 있었다. 이미 물에 많이 젖은 채로 겁에 질렸는지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다급하게 세탁기 전원을 끄려고 했지만 전원이 꺼지지 않았고 결국 싱크대 물건을 마구 끄집어내 세탁기 코드를 뽑았다. 그렇게 세탁기가 멈췄다.


세탁기를 열어 로티를 꺼내주려는데 세탁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무지성으로 세탁기 문을 몇 번이고 강하게 잡아당겼지만 역부족이었다. 다급함에 휴대폰을 찾아 검색해 보니, 10여분은 있어야 잠금장치가 풀려 문을 열 수 있지만 물 때문에 문이 안 열릴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탁기에서 물 빼는 방법까지 찾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세숫대야를 가지고 와 세탁기의 물을 뺐다. 물 빼는 내내 세탁기 안에서 울고 있는 로티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곧 열어주겠다고 달래면서.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세탁기가 열렸고, 로티를 꺼내 품에 안았다.


로티가 세탁기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뛰어온 건 버티였다. 버티는 젖은 로티를 계속해서 핥아 주었고, 나는 아이들 앞에서 안도감에 엉엉 소리 내며 울고 말았다. 만약 세탁기를 돌려놓고 청소기를 켠 게 아니라, 늘 하던 대로 세탁기가 끝날 때까지 여유를 만끽했더라면. 그저 빨래더미에서 잠을 자다가 영문도 모른 채 세탁기에 갇혀 떠나게 된 어린 로티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마침 약 2년 전 버티가 냉동실에 들어간 걸 모르고 있다가 한티덕에 알았다고 한 아빠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길 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떨렸는데,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다리까지 떨려 한참이고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조금 진정이 된 후 나는 수건을 가지고 와 로티의 덜 마른 털을 정리해 주었고, 로티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안을 활개치고 돌아다녔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얼마나 쉽게 아이를 잃을 수 있는지를 너무 또렷하게 배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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